혼자 집에서 춤을 춘지 1주일쯤 지났을까, 댄스 학원을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추는 것은 이미 좋았고, 기왕 추는 춤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달 정도 다니면, 내 동작에서 금방 멋짐이 나올 줄 알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학원들은 대체로 2km 내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있었다. 하원 시간이 빠른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어서 무조건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조금 애매했다. 학원에 다녀오면 왕복 2시간 정도 예상되었고, 그러면 하원까지 길어야 1-2시간 밖에 안 남게 된다. 아무리 춤을 배우고 싶어도 아이가 귀가하기 전까지 글쓰기, 그림 그리기, 책 읽기 등 잔잔하게 하고 싶은 나만의 일이 많았다.
"춤 배우려고? 초등학교 건너편에 방송댄스 학원이 하나 있던데"
"그래?"
남편의 한마디에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학원 홈페이지나 원하는 정보가 검색되지 않았다. 지도 앱에서 뷰로 보았더니 사진 속 건물 4층에 방송댄스&에어로빅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보였다. "오- 있었구나"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일 아이 유치원에 보내고 방문해보기로 했다.
"사랑해~ 좋은 하루 보내! 엄마 생일 축하해~ 있다 시간 맞춰서 와. 정문 앞에서 만나~ 안녕! "
"응응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고, 궁금한 건 선생님께 물어보고, 밥도 잘 먹고~ 있다가 만나자. 엄마도 사랑해~"
유치원 현관에서 아이와 뜨거운 인사를 나누고, 씩씩하게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잠시 엄마 스위치를 내렸다.
오전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학원으로 가보자.
6년째 이 동네에 살면서 왜 여기를 몰랐지, 마지막으로 뭘 배워본 게 언제였더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분주한 풍경의 1층 세탁소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열려있을 일 없는 2층 수학학원을 지나고, 3층 탁구장을 거쳐 한층 더 올라가니 나의 목적지였다.
음, 적막하다. 간판에 9시부터 수업이라고 본거 같은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학원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더니 한 분이 밀대로 청소를 하고 계셨다. "저..." 무음을 깨려니까 목소리가 조그맣게 나왔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조금 더 깊숙이 몸을 내밀었더니 드디어 학원에 계신 분이 나를 발견하시고는 인사하셨다. “처음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선생님 잠깐 나가셨는데, 여기에서 기다려주시면, 곧 오실 거예요”
친절하게 안쪽으로 안내해 주셨다.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았다. 낡은 붉은색 소파, 사무실에서 사용했을 법한 어울리지 않는 파티션, 뒤로 놓여있는 옷걸이, 선반 위의 컵라면, 벽 쪽의 사물함, 그 칸마다 붙어있는 이름들, 작은 냉장고, 커다란 선풍기, 가지런히 놓여있는 아령... 컵라면 빼고 모두 오래된 것 같았다. 그 세월의 흔적이 이 공간에 처음 온 나를 조금씩 편안하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이 오셨나? 나를 안내해 주신 분과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명랑하면서 힘이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반만 높이 묶고, 넉넉한 반팔 티셔츠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긴 레터링으로 양쪽 팔에 새긴 타투에 시선이 갔다. 선생님의 스타일과 첫인상에서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색이 느껴졌다. 그 새로움이 좋았다.
학원 비용과 수업 시간, 옷차림 등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가려는데 9시 30분부터 수업이니까 시간이 괜찮으면 하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회원님들이 오셨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뭐 처음이니까. 거울에 비친 선생님을 보며 할 수 있는 동작만 흉내 냈고, 선생님은 물론 다른 분들의 실력과 에너지에 감탄했다. 처음 해보는 움직임을 따라 하느라 정신없이 한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과연 춤을 배울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의심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음악 소리는 커서 심장이 뛰었고, 동작은 큼직큼직해서 운동이 되었다. 더워지기 전 4월 중순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면 절대 만져볼 수 없었을 땀이 났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내 몸을 움직여 흘린 땀을 닦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기분 좋음'만 남아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낌이 왔다.
여기라고! 이걸 하라고!
나의 느낌을 믿으니, 의지는 저절로 세워졌다.
그렇게 한번 다녀온 뒤, 평일 오전에 하던 일들을 정리했다. 1주일 후 운동화를 들고 다시 학원에 가서 수업료를 결제하고 정식으로 등록했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한 회원님들께 나이와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했더니, 선생님은 “민영 씨가 막내네~ 다 언니라고 부르면 돼” 심플하게 말씀하셨다.
이 나이에 막내라니, 다행이다! 나 몸치인데, 잘하지 못해도 괜찮은 특권이 부여된 느낌이었다.
동네 댄스학원에 내 이름이 붙은 사물함이 생겼다.
내가 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순전히 내 마음이 원해서 말이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겪게 될 새로움도 어려움도 인연도 기대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자기야, 나 오늘 댄스학원에 등록했어. 너무 신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민했던 나였는데,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기대가 된다는 것은 온전히 내 안에서 이끄는 대로 선택했을 때,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한 설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