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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Nov 04. 2019

너무 예의 없는 후배님들, 속이 부글부글 끓어요!

심리만만 14화. 꼰대 VS 싸가지 (없는)

Photo by Ruthson Zimmerman on Unsplash



1. ‘예의’의 기준은?


‘예의(禮儀, manner or etiquette)’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사전적 정의(출처. 다음-국어사전)는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다. 이 정의는 몇 가지 개념적인 구분을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두 번째는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한 것’이고, 세 번째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말투나 몸가짐’ 등이다.


굳이 ‘예의’에 대한 개념적 구분을 하는 이유는 이 구분을 이해해야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유’가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의’라는 것은 명백하게 법규로 정의된 구체적인 행동 리스트가 아니며,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윗사람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존댓말’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이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예를 들어 위계가 중시되는 조직에서 ‘Sir’을 붙이는 등), 특별히 존댓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보면, 첫째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점에서 예의를 조망해 보아야 한다. 즉, 각 장소나 상황에 따른 예의의 기준이 모두 상이하다는 점이다. 회사 혹은 개인 차원으로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각 회사마다 ‘예의’의 수준과 범주가 다르며, 개인의 경우에는 더욱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예의’ 수준을 결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maybe, 후배들!)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 정답인지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그들 자신이 더 헷갈리고 괴로울지도 모른다?!


둘째,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존경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상황’ 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누가 봐도 존경을 표해야 하는 대상이나 상황은 무엇일까? 그럼 과연 회사에서는 ‘존경’을 보여야 하는가? 그렇다고 한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존경’을 보여야 하는가? 아마도 나이가 많을수록, 혹은 직장생활을 오래 했을수록 상호 간에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을 것이다.. 반면에 신세대 직장인들은 ‘직장은 일하는 곳 아닌가?’,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셋째, ‘말투나 몸가짐’의 경우에는 정말 정답이 없다. 이는 문화권마다 다를 뿐 아니라 조직의 업 특성이나 문화에 따라서 너무 다르다. 그리고 연령 수준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아예 논외로 하겠다.



2. 맞고, 틀림이 있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과연 “예의”라는 것에 옳고 그름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답은 ‘없다!’이다. 다 각자의 기준과 관점에서의 기준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기준에 따라서 타인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할 뿐이다. 어떤 것이 옳고,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실제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혹은 ‘불문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관습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명확하게 그 개념이 정의되고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인정되는 수준의 규범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벗어날 때에는 ‘몰상식’하다고 평가받거나 혹은 ‘무개념’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상식’ 또한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80-90%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상식’이라고 한다면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편하다! 그것에 대해서 굳이 따지거나, 왜 그래야 하는지 고민하거나, 혹은 불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해봐야 싸움만 나고 갈등만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이와 같은 논의는 결국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예의 없는 후배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이슈이다. ‘예의’라는 것이 가지는 상대적인 의미를 고려할 때 바람직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에 우선 “가르치거나 공유하라!”가 먼저이다. 특히 후배들이나 신입사원들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우선은 가르쳐주거나 혹은 관련 내용에 대해서 공유해주는 것이 먼저이다. 단,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만약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상대를 열받게 하고 더 예의없게 굴것이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현상(즉, ‘here and now’의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 국한된)으로 설명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표현은 “우리 회사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 혹은 “원래 그래!”가 실은 정답이다. 다른 설명이 있겠는가?


둘째, 그래도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후배들은 “싸가지 없는 친구”로 생각해 버려라. 특히 어느 정도는 ‘예의’라는 것이 상대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너무 예의 없는” 후배들의 경우에는 포기하라! 그 부모들도, 그리고 학창 시절에도 못 배운 ‘예의’를 어떻게 그 나이에 배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그냥 “싸가지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라. 당신과 그 후배는 단지 직장 선후배일 뿐이며, 관계에서는 업무 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자잘한 행동 경향성은 부차적이다!


셋째,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화가 나지는 마라. 우리의 생각 이면에는 ‘”싸가지”(즉, 예의!)는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의무이고 원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래 ‘예의’ 바른 사람들이 ‘예의 없는’ 사람에게 더 화가 가는 법이다. 하지만 이는 비합리적 기대이다. 오히려 ‘예의’ 바른 당신이 훌륭한 인품을 가진 좋은 사람인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세상에 소위 ‘싸가지’가 있는 사람이 많겠는가, 아니면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 많겠는가? 그냥 그 부분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접은 후, 우아하고 성숙하게 사는 당신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라!!^^



4. ‘꼰대’ VS ‘예의 없음’


어느 날,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중학생들이 하는 대화에 혼자서 웃음이 터진 일이 있었다. ‘요즘 신입생들은 왜케 싸가지가 없고 건방진거야?!’라고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선배 티를 내면서 후배들을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옆에서 다소 큰 목소리로 떠드는 그들의 대화가 불편하게 보였던 ‘고딩’ 누님의 짜증스러운 눈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바퀴벌레보다도 오랜 생명력을 가질 것이 바로 ‘꼰대’ VS ‘예의 없음’의 논쟁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보다 많은 나이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나를 통제하고 간섭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편하게 느낀다. 이를 바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역으로 모든 사람들은 나의 기대나 요구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기대나 요구에 맞추어 행동하기를 바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후배’ 혹은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버릇없다!”라고 비판한다.


세상은 끝도 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현상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나 원칙은 어느 새인가 구닥다리의 갑갑한 원칙과 기준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동일한 시기라도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여타 상황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으로 생각하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쉬우며, 그 분노를 표현하는 순간 바로 “꼰대”가 된다.


역으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 동네는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직면한 상황에서의 ‘예의’를 지킬지, 그리고 어느 정도 맞춰줄지를 생각하고 행동하면 간단하다. 그런데 자기 기준에 의거하여 ‘왜 이런 거야?’, ‘이건 부당하잖아?!’, ‘저렇게 행동하는 저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린 꼰대” 혹은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결국 ‘예의’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느 수준으로 이를 준수하고 맞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분노할 것도 없으며, 또한 너무 무시할 필요도 없다.


하긴 세상 어떤 일이 안 그렇겠는가?! 분명한 것 하나는 세상 돌아가는 기준과 원칙이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며, 그에 적응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 그것만 잘 기억하고 있어도 어디 가서 ‘꼰대’ 소리도 안 듣고, ‘예의 없는’이라는 평가도 안 받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본 글과 관련된 방송은 다음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65/clips/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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