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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Jan 09. 2023

내가 '글로리'를 보지 않는 이유

Photo by Adrien Olichon on Unsplash



1. 내가 '글로리'를 보지 않는 이유


최근 넷플릭스에서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내용은 학폭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김은숙 작가님의 작품이기도 하며, 송혜교 님이 주연을 하시는 드라마라 더욱더 큰 관심과 인기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강의나 내담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소위 유행(?!)한다는 것은 직업적 차원에서도 가능하면 경험하려고 하는데.. '글로리'는 너무 불편해서 안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동안 제가 모셨던 '학폭 피해자' 내담자들 생각과 더불어 그분들이 저 드라마를 본다면...이라는 생각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교사 폭력'에 대한 기억들 때문입니다.  


 

2. 보보 인형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위험 신호


심리학 실험 중 보보인형 실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실험자가 보보인형을 때린 후 보상을 받는 장면을 옆방에서 관찰한 아동들은 보보인형을 때리는 행동이 증가하였으나 실험자가 보보인형을 때린 후 처벌을 받는 장면을 옆방에서 관찰한 아동들은 옆방에 들어가서도 보보인형을 때리지 않더라 라는 간단한 결론입니다. 

이는 관찰 학습의 대표적인 실험으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행동을 학습하고 발현될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 이면에는 숨겨진 팩트가 있습니다. 

만약 실험자가 처벌받는 장면을 본 아동들의 경우, 인형을 때리는 행동으로 처벌을 받지 않거나 혹은 보상을 준다는 유도를 하면 때리는 행동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관찰학습이란 특정 행동(때리는 행동)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행동이 발현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결국 그 행동으로 인한 보상이나 처벌을 예상하는 데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즉, 학폭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나오는 특정 학생을 괴롭히는 구체적인 행동이나 방법, 그리고 친구를 괴롭힌 후에도 처벌을 받지 않는 방법(권력자의 자녀, 합의 후 보복, 눈물지으면서 거짓말하기 등) 등에 대한 학습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가가 나름대로 보상이 아닌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수 있으나 어른 창작가의 눈으로 본 보상과 처벌은 청소년들이 보는 보상과 처벌과는 다른 의미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어른이 되어서 결국에는 보복을 받는 권선징악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그 때까지의 수십 년의 고통이나 가해/피해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극 중 가해자들이 수십 년 전과 똑같은 가해자적 태도를 보이면서 반성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아직도 이전과 같은 행동 패턴을 유지하는 것처럼..  



3. '리얼리티'의 양면성


드라마는 결국 현실을 반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극적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장되고 자극적인 면이 많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사고발이나 재현 프로그램 등의 경우에도 방송 매체의 사회적 기능과 더불어 모방 범죄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시청률이나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순히 유튜브 돈벌이를 위해서 가짜뉴스를 만들면 안 되는 것처럼,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는 이유로 또는 자극적인 요소를 통해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지나친 사실적 묘사나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구성 등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피해자들의 아픔을 고려하라


'글로리'라는 드라마의 초반에 과거 회상의 형식으로 가해학생들에 의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괴롭힘부터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글로리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중단하게 된 장면은 '피해 학생의 말대답?에 화가 나서 어린 여학생을 교무실에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도 아직 남아있는 몇 가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납득이나 설명도 없이 '다른 반 반장들은 모두 맞았으니까!'와 '나는 원래 제자에 대한 애정은 이렇게 표현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어두컴컴한 학교 지하 보일러 실에 끌려가서 탁구대 위에서 바지를 걷고 40대를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 친구를 불러 강제로 제 행동이 이상하다는 자술서?를 쓰게 하고 그걸 근거로 종례 시간에 갑자기 '너 정신 못 차리지!'라고 하면서 대걸레 자루로 수십대를 맞았던 사건입니다. 

교무실에서, 교사에 의해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 장면에 저의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5.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물론 이를 위한 가이드나 지침을 만들어서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어디까지는 금지한다는 규정을 짓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에는 각자의 생각과 판단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받게 될 심리적 고통이 고려되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운동선수 등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보듯이 가해자는 자기가 가해를 한 줄도 모른 채로 편안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들은 십 년도 넘은 사건에 대해서 재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십 년도 넘는 시간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인 것처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 그분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필요하지 않나 싶은 노파심에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또한 그 드라마를 보면서 혹시라도 이전에 고통과 아픔에 다시 휩싸이셨다면, '적극적으로 회피'하시고 이전의 마음의 평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mindclinic/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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