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Melanie Wasser on Unsplash
수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더 글로리'가 종영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대로 연진이는 반성하지 않았으며, 결국은 본인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파국을 맞이하였습니다.
극의 처음부터 내내 불편하고 아팠던 마음이 극이 끝날 때까지도 내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속의 동은이에게 그나마 위로와 치유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1. 반사회적 성격장애 & 품행장애
극 중 가해자 집단이 보이는 행동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반사회적 성격 장애라고 진단 가능할 정도이며, 아직 성인으로서의 성숙도와 인격적 완성이 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품행장애라고 진단합니다.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며, 그 수준이 법률적 위반을 넘어서서 피해자에게 평생 남고도 남을만한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은 명백한 문제입니다.
청소년기에 붙이는 품행장애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차적 품행장애(primary conduct disorder)와 이차적 품행장애(secondary conduct disorder)입니다.
일차적 품행장애는 진성 품행장애이며, 전통적 의미의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특성과 행동을 모두 보입니다.
그러나 이차적 품행장애는 행동은 품행장애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 원인은 우울증이나 자아정체감 혼란 등으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극 중에서 보면 박연진과 전재준 정도는 일차적 품행장애 정도에 해당이 되며, 최혜정과 손명오는 알고 보면 이차 품행장애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차적 품행장애는 심리적 문제들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행동적 문제들이 없어지면서 바른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차적 품행장애는 성인이 되어서도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2. 그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 :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의 결여
그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처절한 문제의식과 심리적 고통이 있어야 하며, 특히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의 경우에는 죄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품행장애나 반사회적 성격의 경우에는 죄책감은 고사하고 우울감이나 불안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불편하고 불쾌함 정도만 느낄 뿐...
또한 피해자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서 깨닫거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도 없으며 오히려 더 공격적인 언행을 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데 대해서도 변명이나 둘러치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진정한 사과가 나오기 어려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도 공감능력이 있었다면 그런 짓 자체를 안 했겠지요!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능력 및 공감능력 결여는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없음을 반영합니다.
이와 같은 감정인식이나 관리능력은 초기 아동기 애착경험 등으로 통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변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백번을 판단해 보아야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3. 그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 : 현실적인 이익과 쾌락
그런데, 보통 누구나 다 느낀다고 생각하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삶은 어떨까요?
아마도 매우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강렬한 자극입니다.
극 중 이사라(목사님 딸, 마약쟁이)의 경우에는 진성 품행장애로 분류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심하게 괴롭히거나 가해를 하는데 직접적으로 참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마약이라는 다른 쾌락도구가 있었습니다.
마약은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단지 강한 자극과 쾌락을 주어서 만족한 듯, 행복한 듯 착각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공격성은 인간의 본능이며, 누군가를 경쟁해서 이기거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하나의 쾌락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것을 통해서 자기 존중감이 높아지고, 성취감과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쾌락으로만 경험할 수 밖에 없다면 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돈을 수단으로 할 수도 있으며, 권력을 수단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비하하고, 공격하며, 그들의 고통을 쾌락으로 즐기는 순간 그 행동은 반복되며 바뀌기 어렵습니다.
더 이상 타인을 비하할 수 없고(박연진이 교도소에 들어가서 비굴한 일기예보를 하는 상황 등), 타인을 공격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하거나 나의 힘이 빠지는 경우(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만 가학 행동을 하게 됨)가 아니라면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4. 글로리가 우리에게 준 글로리
저는 극 초반 학폭의 피해자였던 저의 내담자들 생각에 차마 드라마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철저한 복수를 통해서 그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나마 제 내담자분들이 대리 만족이라도 하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워낙 한 명의 배우도 연기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없었고, 내용 자체도 탄탄하고 잘 쓰인 각본이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몰입을 유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 엔딩이 끝나고 나니 우리에게는 몇 가지 남은 선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학폭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각성입니다.
그동안 학폭이 문제라는 것은 다 알았지만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황폐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행동들이 어느 정도의 심각한 죗값을 치러야만 하는 일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뼈 아프게 새기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우아한 캠페인이나 홍보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강렬한 문제의식을 만들어주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묻혀왔던 우리의 어두운 부분들이 좀 더 밝은 부분들도 드러나 개선과 해결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하나는 교사 폭력에 대한 각성입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옷을 다 벗기고 대걸레 자루로 때리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전통 하에 폭력이 자행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와 같이 우리가 간과하던 학교 내 폭력의 또 다른 면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묻혀왔던 우리의 어두운 부분 중 두 번째는 가해자에게만 관대한 편향된 인권 보호였습니다.
얼마 전 주요 권력기관의 핵심부서장으로 임명되었던 분의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밝혀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글로리 방영과 맞물려 다른 그 어떤 학폭 사건보다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생각했던 것 하나가 제대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자의 신상을 삭제하여 결국에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자행되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반성을 했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 방식으로 면죄를 받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 가해자들은 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들은 심각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겪는 기가 막힌 제도가 소위 학생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몇몇 인권론자들에 의해서 지속되어 왔었습니다.
그래도 동은이 선생님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이 또한 없어져야 하는 학교 폭력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5. 우리 시대의 동은이들에게 전하는 말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시대의 동은이들에게는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물론 직접적인 복수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망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복수를 통해서 가해자들이 망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려면 극 중 동은이 정도의 노력과 실행을 준비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느니 그 에너지를 모아서 본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낫다고 권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잘못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는 기회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가해자들의 가스라이팅으로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잘못이 있을 수도 있으며, 실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들의 잘못된 행동과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것들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제 내담자분들 중에서도 동은이와 같은 복수를 꿈꾸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정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짜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함께 정교한 계획을 자다 보면 나오는 반응 두 가지는 복수를 꿈꾸는 과정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힐링이 되었으며, 복수하는데 드는 노력과 에너지로 차라리 행복하게 살고 말렵니다입니다.
단, 절대 용서는 없으며 처절하게 복수를 할 것인지, 아니면 용서는 없지만 복수의 에너지를 차라리 나의 미래 행복에 투자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때로는 그 시절의 아픔과 고통은 상담 선생님과 풀어내고 절대로 용서하지는 않지만 이글거리는 분노로 내 마음의 평화마저도 깨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환한 웃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권 또한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는 없어도 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미래에 영광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몇몇 사람 중에는 김은숙 작가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작품 중에서도 '미스터 선샤인'은 지금도 종종 보는 드라마이며, '도깨비'는 짤로서 자주 즐기는 내용입니다.
어쩜 그렇게 역사물부터 시작해서 로코나 재벌가의 얘기까지..
그분의 창의력과 공감력,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풀어내는 능력에 마음을 다해 존경을 표현합니다.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도록 해주시고, 이 사회에 큰 울림과 느낌표를 전해주신 김은숙 작가님과 열연해 주신 배우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https://brunch.co.kr/@mindclinic/709
https://brunch.co.kr/@mindclinic/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