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나 '무의식'과 같은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이 '긍정적인 확언'이나 시크릿 류의 '성공과 부를 위한 심상화'와 같은 것들일 것이다. 이와 관련된 책이나 기타 컨텐츠가 워낙 많기도 하고, 무의식은 반복에 의해 바꿀 수 있기도 해서 긍정적인 효과가 실제로 있긴 하니까.
하지만 이건 마치 토지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씨앗을 뿌리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땅에 쓰레기가 많으면? 너무 덥거나, 춥다면? 땅이 아예 콘크리트 판이라면? 당신은 자신의 마음이 씨앗의 성장을 방해할 요소가 전혀 없는 땅과 같은 상태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8살의 두려움이 50살의 불면증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50살의 현재의식은 잠이 잘 온다는 확언과 심상화를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런 식으로 결과로 나타나는 표면의 현상과 전혀 다른 원인으로 심겨져 있는 심층의 고착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래서 확언과 심상화는 '열린 문장'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 보다는 '나에게 유리한 인연만을 만난다'가 더 열려있는 확언이고 '나는 부자가 된다' 보다는 '나는 내 돈 그릇 내에서 풍요를 누린다'가 더 안전한 확언일 것이다.
여기서 더 현명하다면 무엇을 심기 이전에 밭을 살살 만지면서, 깊은 이완이나 여러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봄으로써 내 안에 심겨져 있는 것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났을 때에도 '넌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 '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넌 잘못되었다',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와 같이 꾸짖거나, 아니면 아예 기존의 모습 위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덮어쓰기를 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현실에서 가장 괴로워하는 사안의 원인이 되는 무의식의 또 다른 나 자신과 만났을 때, 이 존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마주했을 때, 내 현재의식은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평소에 실컷 욕하고 비난하고 '그딴 식으로 살면 안 돼'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실컷 퍼부어볼까?
최면도 도구일 뿐이다. 내담자가 협력한다면, 이 존재를 만나게 하는 것까지는 해줄 수가 있다.
그런데 만나기 전에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도 않은 사람들을 그렇게 눈꼴시려워 하던 내가, 내 인생 최고의 고통을 나에게 선사하는 내 내면아이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