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끝에 시작된 인연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너무 잘 안다.
쪽지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뭐라고 써야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는 프로필 문답을 올리지 않아서 상대는 전혀 나에 대하여 알 수 없다.
글에 최대한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는 나의 정보를 넣어야겠다 생각했다.
답이 안 올 수도 있고
상대에게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쪽지를 보내놓고 잊어야지 생각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헉.. 뭐라고 쓰나...
종이에 내용을 적었다 지웠다....
왠지 이력서 쓸 때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 그냥 나답게 쓰자.
"안녕하세요?
혹시 좋은 분 만나고 계신가요? 작성된 지 한참 된 프로필을 봐서 여쭤봅니다.
같은 지역 분이라 반가워서 쪽지 보냅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그냥 보내지 말까?'
'이렇게 부끄러워해가며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야 하나?'
아마 누구라도 이 순간엔 망설였을 거다.
나만 이런 게 아닐 거라고, 괜히 스스로 위안했다.
어쩌면, 다들 이렇게 한 번쯤 멈칫하다가 인연을 만난 걸지도 모르잖아.
이런 과정 없이 시작될 수는 없으니까.
그 뒤에 직업이랑 종교랑 나이 정도를 더 적었다.
보관함에 넣어놓고 다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눌러버려야지 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자 마음에 걸려있는 무언가가 불편해졌다.
그냥 확 보내기 버튼을 눌러 버렸다.
보내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만 맴돌았다.
참 답답하게도
쪽지는 답장이 왔다는 알람기능이 없다...
틈 나는 대로 들어가서 한 번씩 확인해야 하는데
사람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밤 근무하다 새벽에 쪽지를 보냈는데
낮에 자고 일어나서도
그다음 날도 답은 오지 않았다.
'광고 쪽지조차 하나도 안 오네.'
참 나 자신이 한심하다.
혼자 자책하는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휴..
3일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빵 집에서 빵을 기다리다 무심코 쪽지 보관함을 눌렀는데
읽지 않은 쪽지가 있다.
손가락이 떨렸다.
심장이 괜히 쿵 내려앉았다가,
또 웃음이 쿡 새어 나왔다.
혼자 별 꼴이네.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누가 보면 내가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줄 알겠다.
그래도, 참 웃긴다.
이렇게 설렐 일이었나 싶어서.
"안녕하세요? 제가 쪽지를 잘 안 봐서 이제 쪽지보고 답장 드려요.
특별히 만나는 사람은 없고요.
좀 설레고 반가웠어요.
조금씩 알아가고 싶습니다."
짧은 답장을 외우도록 읽었다.
일단 어느 정도 대화를 해보고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취미나 일상에 대하여 몇 번 더 쪽지를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은 더 진솔해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만남의 아픔 때문일까?
마음을 열기 전 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가 제일 중요하게 느껴졌다.
"저는 남편이 암에 걸려 사별했어요.
아들 둘 키우고 있고요.
연애만 하고 싶은 것도 재혼을 꼭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안면도 트기 전에 이런 말은 너무 과한 걸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나중에 그 상황을 듣고 돌아서는 것보단,
지금이 낫다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상대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저는 이혼한 지 꽤 되었는데 딸아이와 한 달에 두 번 면접합니다.
어느새 10살이 되었습니다.
오늘내일은 면접 중이라 바로바로 답장을 못해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죄송해요."
답장에서 묻어나는 딸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자상함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이어진 대화 덕분에
어느새 서로에게 조금은 편안해졌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늦은 밤,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기엔 아직 이른 마음의 거리였지만,
그 밤,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넘어섰다.
참, 인연이란 건 이런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는 거였구나.
이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주 2회 연재를 목표로 해보니, 솔직히 조금 숨이 차더라고요.
이제는 '글을 쓰고 싶을 때' 천천히 꺼내놓으려 해요.
기다려주시는 분들께는 감사한 마음으로,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음 글은, 제 마음의 여유를 조금 찾고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