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진 이별, 준비되지 않은 마음
호스피스 권유 후
한동안 도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모님,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제가 속 많이 썩여 죄송했습니다."
평소 다정하지 않았던 사위의 말에 엄마는 매일 눈물을 보이셨고,
"여보, 정말 고마웠어. 내가 없으면 혼자 힘들게 살지 말고 결혼해. 난 괜찮아..."
"난 결혼 안 할 거야. 또 고생하라고?"라며 웃어 넘기기도 했다.
평소 표현에 서툴렀던 도하는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좋다."며 어색한 진심을 꺼내놓았다.
그 순간순간,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도하가 원하는 걸 해주려 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엄마, 왜 그랬어? 아빠한테 좀 더 잘해주지..."
라고 말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안에 오래 남을 미안함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사실, 그 사람을 애틋하게 사랑해서 돌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한 사람의 마지막이 후회 없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어느 날, 도하를 병문안 온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약해지면 안 돼. 넌 살 수 있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스스로 약해지지 마."
그 친구는 내게도, 도하에게도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다.
도하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듬뿍 담긴 말이었지만,
그 후로 도하는 죽음에 대해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먹으면 다 토했지만,
다행히? 입맛은 잃지 않았다.
밀면, 짜장면, 쌀국수처럼 비교적 잘 넘어가는 음식들을 찾았고, 콜라와 믹스커피도 하루에 몇 잔씩 마셨다.
나는 매일 한 그릇씩 포장해 왔고, 콜라와 커피는 박스로 주문해 쌓아 두었다.
암이 빨리 자랄 것 같은 음식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기를' 바라며 죄책감을 뒤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조금이라도 흡수되어야 살 수 있었겠구나' 싶다.
암 진행 상태가 궁금해 검사를 요청했지만, 의사는 의미 없는 검사라며 거절했고,
우리는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들을...
장례 2~3일 전쯤, 주치의가 조용히 말해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하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울지 걱정되었고, 나는 계속 안심시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잘 키울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도 잘 지낼게."
"고마웠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했던 내 모습이, 지금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때, 조금만 더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더라면.
그 마음을 더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그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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