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힘과 무게에 관한 생각

상담사는 늘 다정해야 할까?

어느 날, 내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은 참 다정하고 친절하세요.

그런데 그렇게 친절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그 질문에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다정함이란 뭘까? 친절함은 또 무엇일까?…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누군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혹은 기대하지 않은 순간 친절함을 경험했을 때,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의 반짝임을 경험한다. 그 다정한 한마디, 따뜻한 눈길이 세상은 따듯하다, 차갑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심어주기도 한다.


[ 진화의 언어로 본 다정함과 친절함 ]


인간은 태생부터 ‘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생존이 어려웠고, 협력과 돌봄은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다정함 은 ‘애착’의 기초였다. 아기의 울음에 반응해 주는 어른, 울 때 안아주는 행동, 이런 것들이 뇌에 안정감을 주는 옥시토신을 분비시키며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게 했다. 어릴 적 부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애정 어린 손길은, 세상을 안전하게 느끼고 더 나아가 관계를 맺으며 나가도록 했다.


친절함 은 ‘협동’을 위한 진화적 기술이었다. 자신의 자원을 나누는 행동,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는 공동체 안에서 나를 유용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친절한 행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래서 어떤 이타행동은 유전적으로도 보상받았고, 우리는 ‘친절하고 착한 사람’에게 더 끌리게 진화해 왔다.


우리가 말하는 다정함은 감정적 공감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느끼려는 진심 어린 태도이다.

다정한 사람은 그저 말로만 따뜻한 이야기를 건네는 게 아니다. 눈빛, 작은 손길, 그저 ‘괜찮아’라고 말하며 옆에 있어주는 행동이 다정함을 만든다. 그 다정함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통로가 된다.


반면, 친절함은 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다. 도움을 주거나, 상대를 배려하며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이타적인 행동이다.

친절한 사람은 종종 매너가 좋다고 여겨지지만, 그 이면에는 감정적 연결보다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때도 많다.


+ “밥은 먹었어?” 같은 안부

+ 혼자 걷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

+ 추운 날 핫팩을 건네는 손

+ 눈치를 보며 조심히 위로하는 말투

+ 말보단 행동으로 표현되는 정(情)


한국에서 다정함은 보통 온기 있고 섬세한 배려로 인식된다. 관계 중심 공동체 중심 문화인 만큼, 상대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가 ‘다정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정함의 선택]

상담자로 살아간다는 건,

또 내가 일시보호시설애서 학대피해아동을 만나온 경험은 때론 아니 종종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먼저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그 안에 오래된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럴수록 나는 다짐하곤 했다.

그 아이들의 세상이 거칠수록, 나만은 다정하자.

누군가의 삶에 한 사람쯤은,

따뜻하게 반겨주고, 미소 지어주는 존재가 되자.

누군가 너무 날이 서 있을 때, 그 날카로움이 나에게 닿기 전에, 내가 먼저 부드러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 역시 한국사회에서 평범하게 자라 가족 간 갈등이 존재하고 부모님의 감정적 반응은 때로 상처가 되기도 했다. 가족 갈등, 엄한 훈육… 학교나 직장 모두 자기주장이나 침묵과 인내를 앞섰던 분위기를 살았다.

그 안에서 나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마음의 온기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 말보다 침묵이 편해지고, 내 마음보다 눈치를 먼저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알게 된 거 같다.

다정함은 결코 가벼운 태도가 아니라는 걸

다정함은 때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이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착한 사람 역할’도 아니고, 불편함을 피하려는 회피도 아니다.

나의 상처를 알고 있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함을 선택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상담자의 다정함]

상담자는 늘 다정해야 할까?

모든 장면에 그럴 수 있을까? 그게 옳을까?


가끔 상담자라는 직업에 대해 오해를 받는다.

“상담은 늘 따뜻하고 친절해야 하지 않나요?”

“상담자는 착하고 이해심 많아야죠.”

그 말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상담이

‘늘 친절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 이건 꼭 말하고 싶다.


상담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오히려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심리적 안전지대를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담자는 때로 방어하거나, 회피하거나, 자기 안의 상처를 외면하려 한다. 그 순간 상담자는 불편한 진실을 함께 마주하게 돕는 용기를 낸다.

부드러운 말보다 단호한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상대의 감정에 ‘좋게’ 반응하는 것보다, 관계 안에서 경계를 지키고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내담자에게 다정함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다정한 태도는 오히려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애씀 안에서 ‘다정함’이 조작되거나, 상처와 연결된 경험이 있다면 그 따뜻함조차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다정함’이라는 태도를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조절하고 조율하는 수련을 끊임없이 해나간다. 진심이더라도, 내 마음의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건, 그 다정함이 지금 이 관계에서 유익한가를 늘 되묻는 태도다.


상담자도 한 인간이다. 모든 순간 다정할 수도 없고, 모든 내담자에게 친절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진심을 지키고, 관계를 회복하며, 성장에 동행하려는 사람이다.

상담자는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 자신을 수련하는 존재이다.

당신이 지키는 침묵, 당신이 건네는 한마디,

그 모든 다정함은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될 것이다.


[ ‘다정한 상담쌤‘ 이라 불리며]

아이들은 보통 나를 상담쌤, 놀이쌤, 이야기선생님 등으로 불러왔다. 세월이 흘러 흘러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몇몇 청소년들이 나를 불러 준 ‘다정한 상담쌤’이 지금 나의 작가명이 되었다. 좋다.


다정함은 전염된다.

다정함은 누군가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다시 누군가를 향해 건네질 수 있게 만든다.

다정함과 친절함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계를 연결하고, 서로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 준다. 하지만 그 또한 선을 그어야 할 때가 필요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다정함과 친절함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조금 더 따뜻한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정함을 선택한다

내가 선택한 ‘다정함’

그리고 지금은, 거의 습관처럼

몸에 밴 삶의 태도인 ‘다정함‘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되고,

내담자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괜찮아요’ 하고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게 된다.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고

나의 진실된 다정함을 연습할 것이다.

굳이 날카롭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익히고

증명해 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말해 본다.

“힘든 세상, 나라도 다정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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