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나에게 다정한가요?”

다정함 속 조심스러움 그리고 우울

- 우울함에 대하여, 나의 이야기로부터

(내사, 자기 탓으로 돌리기)


나는 스스로를 밝고, 평온하고, 감정의 큰 요동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기쁜 일에도 너무 들뜨지 않고, 슬픈 일에도 크게 무너지지 않는. 그런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여겨온 거 같다.


조용한 건 차분해서 그렇다고, 감정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조절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게

‘나는 잘하고 있어’라는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건강 문제가 발생하였고,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또 몇번의 집단상담 참여와 교육분석을 통해

내 안의 ‘조용함’이 꼭 평온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나 스스로 꺼내어 바라보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마음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그 결을 따라가기가 점점 낯설어지고 어떤 감정을 오래 붙잡지 못하고 슬며시 흘려보내는 날들을 발견한다. 막상 화를 내지 않고 울지 않고 지나가는 나를 보며 문득, ‘내가 지금 뭘 느끼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건너뛰는 방식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었다는 걸 안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

상처 주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가능한 한 좋은 사람.

그래서 내 감정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더 먼저 살피곤 했다. 이런 태도는 내가 더 유연하고 배려 깊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속으로는 내 마음을 뒤로 미루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금 기분은 잠깐 참고 넘어가자.”

“나는 괜찮아. 이 정도는 그냥 지나가면 돼.”


그렇게 말할수록,

진짜 내 마음은 점점 멀리 밀려나 있었다.


우울은 종종 그런 식으로 온다.

큰 사건 없이, 그냥 조용하게 스며든다.

별일 없는 일상 속에서 “왜 이렇게 공허하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사실 우울은

이미 오래전부터 머물러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우울을 겪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우울을 들여다볼 때, 나 역시

나의 마음을 함께 돌보게 된다.


오해를 하지 않도록 정확히 말하자면 임상적 우울진단명이 아닌, ‘우울성 성격‘ 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거다.

특히 조용하고, 예민하고, 관계를 섬세하게 읽는 사람들, 어쩌면 심리상담사들이나 돌봄종사자들은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정서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내사적인 우울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고 현재 읽고 있는 책에도 설명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우울이 결코 나약함의 증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너무 애써왔기 때문에, 너무 오래 감정을 눌러왔기 때문에 생긴 나이테 같은 정직한 반응일 수 있다.


나는 이제 나의 조심스러운 다정함을 더 깊이 안아주려 한다. 나의 다정함은 분명 내게 큰 힘이자, 나를 지켜준 소중한 태도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다정함 뒤에 숨겨두었던 내 감정들도

조금씩 꺼내어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먼저 조심스레 안부를 묻고,

“요즘 나는 어떤지” 살펴주려 한다.


우울은 삶을 멈추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다.

지금 그 감정 앞에 서 있다면, 서둘러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조용히, 그 마음을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된다.


혹시 지금,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나는 지금, 나에게 다정한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