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무의식)이 전하는 메시지
《회색의 아침》
일주일째, 남편은 ****에게 보낼 국제적 메시지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하루 천천히 출근한다고 하여, 넓은 창으로 초록 잔디와 숲이 보이는 카페에 갔다.
오랜만에 둘이 차를 마신다. 같이 앉아 창밖을 보는데, 남편의 전화벨이 계속 바쁘게 울린다.
다음 날, 남편과 그 카페를 또 가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급하게 회의를 가봐야 한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핸드폰으로 뉴스를 켜 보기도 귀찮다.
날이 덥다.
큰 도로를 건너 사무실로 출근하려고 하는데, 굉음을 내는 여러 색 무늬의 차가 달려온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 차는 초록불을 무시하고 달려간다.
한 아저씨가 “빌어먹을 **** 것들.”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시계를 보니 8시 50분이다.
11시까지 출근이니 걸어갈까? 더우니 버스를 탈까?
고민하며 걷는다.
걸으며 보니, 화단의 장미꽃들이 예쁘다.
조금씩 땀이 난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숨이 가쁘다.
장미 화단이 앞길을 가려,
땀을 닦으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왼쪽 길가 펜스 너머, 한 주택 안에서 할아버지가 부채질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시 걷는다.
장미넝쿨을 피해 바깥쪽으로 걷고 있는데, 오른쪽 길가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여러 명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온다.
그 순간, 오른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빠르게 퍼진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장미 화단 쪽으로 머리를 처박고 입을 막았다.
말 그대로 ‘펑.’ 처음 들어보는 큰 폭발음이었다.
거대한 풍선이 터진 것 같고,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숨을 쉬면, 눈을 뜨면 죽을 것 같았다.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웅크린 채로,
한 손은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내 눈을 만져본다.
마스크가 필요하다.
실눈을 떠 보니, 장미 화단 아래가 보인다.
그 사이로 회색의 작은 줄이 보인다.
마스크 줄 같아서 당겨 본다.
누가 버린 것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아,
줄을 당겨 마스크를 펼쳐 보니 이미 너무 젖어 있다.
마스크를 내려두고, 일어났다.
세상은 회색 잿빛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남편은 괜찮을까? 이곳과 가까운 둘째 학교로 먼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걷기 시작한다.
《회색의 아침 2: 걸어가는 중입니다》
걸음을 옮긴다.
둘째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쯤.
버스를 타면 빠를 텐데, 지금 버스가 올까?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걸어가는 중이다.
발바닥이 달아오르고,
속이 메스껍다.
주먹을 쥔 채 걷는다.
도로 옆 나무들이 반쯤 타 있다.
잿빛 먼지가 내려앉은 잎들.
아까까지만 해도 장미가 피어 있었는데.
핸드폰을 꺼낸다.
인터넷이 안 된다.
‘남편에게 전화라도 해볼까?’
통화 연결음조차 없다.
화면에 “서비스 없음”이라고 뜬다.
주변 사람들도 어딘가 걷고 있다.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
누구도 소리치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그냥 다들 걷는다.
학교 쪽으로 골목에 들어서자,
눈앞에 먼지가 더 짙어진다.
아이들 학교 담벼락도 회색빛이다.
멀리 운동장이 보인다.
그 안에, 아이들이 있는 것 같다.
움직임이 있다.
소리가 들린다.
문은 잠겨 있다.
현관 쪽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가 내 팔을 붙잡는다.
— “어머, 어머님?”
고개를 돌리니,
둘째 반 담임 선생님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얼굴로 나를 본다.
눈가가 젖어 있다.
— “아이들은, 괜찮아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온다.
— “네… 아이들 모두 강당에 모여 있어요.
구조 연락은 했는데… 아직 연결이 안 돼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울 생각은 없었는데,
선생님의 그 눈빛 때문에,
강당 쪽으로 함께 간다.
비상용으로 열린 문 사이로 아이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서는 순간,
둘째가 나를 본다.
— “엄마!”
나도 모르게 달려가 안는다.
작은 등이, 살아 있는 온기가 느껴진다.
숨을 쉰다.
아직, 괜찮다.
《회색의 아침 3: 밤이 되면》
강당은 어둡고 습했다.
아이들은 얇은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몇 명은 울었고,
몇 명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둘째는 내 무릎에 기대 잠들었다.
작은 등이 들숨, 날숨으로 움직인다.
그래, 살아 있다.
그 사실 하나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하늘은 여전히 검은 연기로 가득하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는 누군가 이름을 부르거나,
멀리서 또 다른 굉음이 간헐적으로 들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핸드폰은 여전히 먹통이다.
남편은 어디에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못했다.
첫째도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지도.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 입에서 원망 한숨 화가 들린다.
“어디까지…”
“이제는…”
“더는…”
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내 무릎 위에 웅크린 이 작은 생명이
내일도 함께 이길
그 생각 하나만 붙든다.
다음날 아침,
학교 창고에서 남은 물을 나눠주며
한 선생님이 말했다.
— “이 근처 대부분이 끊겼대요. 전기도, 물도, 길도.”
— “어디로 가야 할까요?” 누가 물었다.
— “아직…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다.
내가 살던 집은 무사할까.
우리가 자던 침대, 웃던 부엌,
아이가 그림 그리던 거실 창가.
그 모든 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혹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밤이 되면,
나는 자꾸 상상하게 된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
“걱정했지?”
그 목소리.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젠… 그의 얼굴조차 흐릿하다.
밤은 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회색이다.
《회색의 아침 4: 연결음》
사흘째다.
학교 강당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배고프다던 아이들도
화내던 어른들도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뉴스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잊은 듯하다
어떠한 ‘소식’을 보내지 않는 것 같다.
그날 오후,
창고 옆에서 충전기를 발견했다.
어떤 봉사자가 통화가 된다고 했다!
줄을 서서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핸드폰을 켜자,
화면에 약한 신호가 잡혔다.
두 줄.
진동이 울린다.
카톡 알림은 수십 개.
하지만 읽을 겨를이 없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첫째에게.
전화를 거는 내 손이 떨린다.
망설이다가 눌렀다.
신호음이… 간다.
1초
2초
끊기지 않는다.
3초
“여보세요…?”
그 목소리.
작고, 높고,
어딘가 울먹인 목소리.
“엄마야, 엄마야… 엄마 맞지? 엄마….”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목구멍이 막혔다.
입술을 떼기만 했는데,
숨과 함께 눈물이 쏟아진다.
“엄마야… 나 괜찮아… 나, 아빠랑 있어. 우리 피신했어. 아빠가… 날 데리고 나왔어. 그리고… 전화가 안 돼서… 엄마 죽은 줄 알았어….”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음이 목에 걸려 있다.
몸을 웅크린 채, 핸드폰을 쥐고 울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울었다.
“엄마, 울지 마…
나 진짜 괜찮아. 엄마 괜찮아? 둘째는?”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되지 않았다.
눈물이 먼저 말해버려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그날 밤,
강당에 앉아 둘째를 재운 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다시 켰다.
첫째와 찍은 사진들이 떠 있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 바퀴 잡아주며 웃던 그 모습.
유치원 발표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아이.
우리는 살아 있었다.
다 망가졌지만, 살아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났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곳으로 가야 한다.
회색 먼지를 밟고라도,
내가 걸어야 한다.
《회색의 아침 5: 다시, 아침》
밤이 되었다.
둘째는 내 품에 안겨 잠들었고,
나는 강당 구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하지만 뇌는 고요해지지 않았다.
첫째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엄마야… 엄마 맞지…?”
그 말.
그 떨림.
그 울음.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다 괜찮아질까.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더 길고 깊은 무언가의 시작일 수도 있다.
머릿속에서 계속 장미화단이 피어난다.
잿빛 속에서 피어 있던,
유일하게 색이 남아 있던 그 붉은 장미.
그 장미를 바라보다,
나는 생각하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온다.
공기에는 먼지 대신 빵 굽는 냄새가 배어 있다.
숨을 쉰다.
맑은 공기다.
눈앞에는 천장이 있다.
흰색이다.
익숙하다.
고개를 돌리자,
작은 발이 보인다.
둘째가, 내 옆에 누워 자고 있다.
그 옆, 책상 위에는
어제 마시다 남긴 커피잔과
어질러진 책이 그대로다.
현실이다.
회색 꿈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발끝으로 방을 나와
거실로 향한다.
주방에서는
남편이 조용히 전화를 받고 있다.
바쁘게 뭔가를 설명하고,
컴퓨터 화면에는
여전히 중동 뉴스가 켜져 있다.
첫째 방 문을 열어본다.
아이의 이불이 반쯤 젖혀져 있고,
작은 등이 평화롭게 오르내린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숨을 내쉰다.
꿈이었다.
하지만, 너무 또렷했다.
마스크의 젖은 촉감,
장미화단의 땀,
연기의 냄새,
전화 너머 목소리까지.
그 모든 게,
꿈이었단 사실이
살짝 슬프다.
하지만
오늘은 평범한 하루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조용히 창문을 연다.
아침 공기가 들어온다.
먼지도 없고,
연기도 없고,
폭발음도 없다.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왜 이런 꿈이 나에게 왔을까?
어젯밤, 이상하리만치 생생한 꿈을 꿨습니다.
처음엔 그저 더운 날, 바쁜 남편과 잠시 커피를 마시던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굉음이 들리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는 잿빛 세상에서 아이를 찾아 달리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건 그저 불안한 뉴스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 안으로 너무 가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라는 걸요.
뉴스 속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긴장과 분쟁,
멀다고 느꼈던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 같은 장면들.
나는 그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돌보고,
글을 쓰고,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무의식은 이미 깊은 두려움을 품고 있었나 봅니다.
이 글은 급하게 쓴 제 꿈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생생한 장면들이 왜 나에게 왔는지,
내 무의식이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짚어보게 됐습니다.
부디 멀리서 울리는 총성과 연기,
그 잿빛 풍경이 더는 우리 모두의 꿈에까지 스며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꿈은 우리 마음의 안테나가 먼저 감지한 현실의 메시지입니다. 그 울림을 다정하게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