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용기

관계와 기대


“그 사람이 너무 미워요.”


이 말을 듣고,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

불편한가, 낯선가,

아니면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흔히 ‘미워한다, 싫다 ‘ 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조금 더 성숙하다면 이해해야 하고,

조금 더 너그럽다면 받아들여야 하고,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은 ‘이해의 수준’이나 ‘인격의 척도’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감정은 그 자체로 존재에 대한 신호로 보면 편하다.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 기대했거나, 실망했거나,

혹은 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썼다는 증거다.


한 내담자가 말했다.

“미워요. 남편이 얼굴만 봐도 싫고 짜증이 나요. “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용감했다.

그 사람은 자기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그 미움 속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채 누적된 감정과,

관계 안에서 버티려 했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움’을

그저 안 좋은 감정, 없어져야 할 감정쯤으로 여긴다.

“내가 너무 속이 좁은 걸까?”

“왜 이렇게까지 싫을까, 나 이상한 사람 같아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탓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밉다는 감정은 마음을 줬고, 신뢰했고,

그래서 돌아온 상처나 외면이 더 깊게 박힌 상태다.

미움이니 싫음도 마음의 반응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밉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관계에 마음을 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상화와 평가절하 사이, 거리 두기로 살아온 나


사실 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편이다.

“그래도 저 사람에게는 이런 면이 있지.”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어.”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이해해 왔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건 ‘가까워지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이기도 했다.

실망할까 봐, 다가가면 내가 상처받을까 봐

‘좋은 사람’으로만 남겨두는 관계들.

그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이상화와 평가절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사람을 감정이 아닌 개념으로 유지하려 한 것 같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실망하고,

결국은 아주 조용히 멀어지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어떤 사람들은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욕을 하기도

직접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거칠하고 미성숙하게 느껴지던 이들이 말과 행동

예전에는 그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왜 더 예쁘게 표현하지 못할까.

그렇게만 말하면,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들이 거칠게 감정을 내던지는 그 순간,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 사람은 아직 그 관계를 붙들고 있구나.”


감정을 뱉는다는 건,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게 아니라

아직 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감정을 표현해서 내가 미움을 받을 수도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표현하는 용기이다.


서운함도, 분노도, 실망도

사실은 그만큼 기대하고 있었고,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직장 안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때로는 다툰 뒤에 더 돈독해지는 관계를 본다.

서로 싫다 하면서도 그 후에

어쩐지 점점 더 솔직해지고,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경우들이 있다.


내가 상담을 하며 가장 깊이 배운 것은,

감정은 표현되어야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미움을 감추고 사는 사람은 착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감정은 어디론가 흘러나온다.

비꼬는 말투, 피하는 눈빛, 어색한 거리로.


“그때 나 사실, 미웠어.”

“그 말이 너무 서운했어.”

이런 말들로 부정적 감정을 담담하게 전할 수 있는 용기에서 진짜 관계가 피어난다.


미움이나 싫다는 표현이 단순 언어가 아니라,

때로는 감정의 언어, 애정의 또 다른 방식일 수도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성숙함’이라는 기준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그 안에 담긴 진심과 연결되고자 하는

끈을 잡고 있는 마음이

더 깊이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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