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틈

서운함


관계에 있어 기대와 친밀함이 만들어 내는 마음의 틈이 있다.


“별일 아닌데…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우리가 가장 서운함을 크게 느낄 때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다.

멀쩡하게 지나가는 대화 한 마디,

무심히 던진 말투,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진 약속 하나.

그건 사실 일상 속 사소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운함은 이런 사소한 순간 크게 다가온다.

가까운 사람은 나를 더 잘 알아줄 거라고 믿는다.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거라고,

조금은 더 배려해 줄 거라고 바라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그럴 줄 몰랐어.”

“네가 그럴 줄은…”

이런 속 마음이 더 자주 튀어나온다.

그 말 안에는 실망과 동시에,

그만큼 믿고 있었던 진심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서운함은 강렬한 미움보다 더 조용하게 관계를 갉아먹는다. 말로 꺼내기엔 사소해 보이고, 그냥 참기엔 자꾸 마음이 어긋난다. 그래서 더 멀어진다.


이럴 때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는가>이다.

서운함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관계 속에서 내가 은근히 품고 있던 기대, 욕구의 흔적이다. 말하지 않으면, 그 기대는 오해가 되고, 오해는 서운함을 만들고, 서운함은 곧 마음의 거리가 된다.



“그 사람은 정말 아무 뜻 없이 한 말일 거예요…”

“근데도, 그냥 너무 서운했어요.”

어쩌면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관계 회복의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서운함을 솔직히 말할 수 있다는 건, 아직 그 사람에게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너무 참지만 말고 말하면 좋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상했어.”


그 말이 관계의 틈을 다시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이상 대화가 진척되지 않거나 내 마음을 시원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서운함을 느끼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알아야, 상대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안쪽을 들여다봐야 한다.

감정 너머의 감정,

강점 너머의 욕구까지 말이다.


우리가 자주 꺼내는 감정이나 태도는

사실 ‘보이는 마음’ 일뿐이다.

짜증은 외로움일 수 있고,

화는 상처받은 마음일 수 있다.

무관심은 절실한 연결을 바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늘 배려하는 사람은

자신도 존중받고 싶어서 그랬을 수 있다.

항상 책임지는 사람은

쓸모 있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을 수 있다.


그러니까,

태도는 욕구를 포장한 하나의 방식 일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은 진짜 마음으로 가는 입구일 수 있다.


스스로 질문해 보자.

내가 서운했던 순간,

그 밑바닥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는가?

내가 자꾸 꺼내는 태도 뒤에는

어떤 마음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서운함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와 여전히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정하게 마주 볼 수 있다면,

서운함은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틈이 아니라

서로를 더 이해하게 해주는 창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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