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설03
“띠디디딧, 띠디디딧”
투박한 전자음이 울린다.
아 꿈이었구나.
마치 옛날 탁상시계로 알람을 맞춰 놓은 듯 스마트폰으로 전자음이 들리도록 설정해 잠결에 끄고 다시 잠드는 일이 없도록 했다. 스마트폰이 방전돼서 알람이 울리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내 몸 시계가 정확한 시간에 나를 깨웠다. 인체의 신비.
가끔 비행하다 실수하는 꿈을 꾸는데 다시 입대를 하거나 대학교 때 시험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꿈만큼 섬뜩하다. 특히 이번 꿈처럼 아웃바운드 비행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돌아올 때 그 싸늘한 분위기를 감당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기장님이나 나나 전화를 열심히 돌려 인사상의 불이익이 없을지 확인하느라 호텔에서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창밖을 본다. 어제 확인한 대로 날씨가 좋다. 벌써 비행의 반이 끝난 기분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다. 오늘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을 쭉 생각해 본다. 나중에 혹시 기장님이 물어볼 수도 있으니 비상시에 암기하여 수행해야 하는 memory item 들도 떠올려 본다. 몇 개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회사로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매뉴얼을 봐야겠다. SIM 훈련 때가 아니면 실제로 해볼 일이 없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이미 비행 가방은 전날에 다 챙겨두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얼마 전 일본의 무인양품 매장에서 산 파란색 캔버스 재질의 여권지갑을 열어본다. 가격도 저렴하고 실용적이어서 자꾸만 눈이 간다. 없으면 정말 큰일 나는 여권과 비행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비행 가방에 고이 넣는다.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나는 최대한 가볍고 간결하게 짐을 싸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 충전기와 노트북 아답터를 따로 들고 다니기 싫어서 기어이 PD 충전을 지원하는 노트북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동남아로 가는 비행은 호텔에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 되기 때문에 부피가 작아서 좋다.
유니폼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 난 여전히 넥타이 매는 것에 서툴다. 몇 번을 풀었다 맸다 반복해서 딱 벨트 버클을 약간 넘는 정도의 길이로 맞춘다.
이 정도면 됐네.
만족한 길이가 나온 뒤에 재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지금 출발하면 회사 규정상의 쇼업 시간보다 1시간 빨리 도착한다. 하지만 뭔가 빠뜨려서 돌아와야 하거나 가는 길에 차편에 문제가 생기는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최소한 1시간의 마진(margin)을 가지려고 한다. 마진은 조종사가 올바른 판단을 적시에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번 비행도 안전하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