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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책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나를 위한 사치

by 김바리

이번주 글감

어떤 상황에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사치는 무엇인가요? 반드시 물건 소비를 위한 사치 외에도 시간적 사치, 공간적 사치, 미디어를 위한 사치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유 있는 당신의 사치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치라는 단어를 어떻게든 좋게 해석해 보고 싶었다.


국어사전으론 영 성에 차지 않았다.


한자의 모양자를 쪼개 보았다.


奢侈. 클 대 놈(사람) 자 + 사람인 많을 다.


사람을 중심으로 크고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사치를 부린다’는 말을 다르게 해석해보고 싶다.


나를 중심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이 크고 많은 의미를 갖는 것은 무엇일까.


퍼뜩 떠오르는 것은 책이다.


내가 사는 13평 남짓의 투룸에 침대와 옷장을 제외하고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책이다.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 외에도 책이 주는 내 삶의 영향력은 꽤 크다.


20살 이전에는 학교 도서 외에 다른 책을 살 여유가 없었고, 이후에는 기숙사에 살았고, 해외를 들락날락했고, 계속해서 이사를 다녔기에 책을 소유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지금 집에는 4년, 이제 곧 5년 차 거주에 접어든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살림을 하나, 둘씩 더 쌓아갔다.


그리고 책이 나에게 가장 큰 ‘쌓은 살림’이 되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300-500권 정도의 책이 있다.


누군가에겐 많은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때때로 ‘책을 꼭 사서 읽어야 하나’는 질문을 받는 관점에서, 사치의 관점에서, 적지 않은 양이라고 느낀다.


‘그럼, 그 사치를 좀 줄일 필요가 있지 않겠어?’라고 조언해 준다면, ‘맞아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며칠 후 서점에 가 새로운 책을 세 권 더 사서 집이 돌아올 것이다.


책은 나에게, 정신적인 사치다.


포기할 수 없는 사치다.


최근 추석에 가족이 다 같이 모였을 때의 일이다.


엄마, 언니 둘이 저녁 상차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언니들은 그런 내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 강동원이 아주 예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길 했다.


자신은 밥을 먹는 것보다 옷을 사 입는 것이 더 좋다고.


(조금 왜곡되었을 수 있지만, 대충 이런 맥락이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옷’을 ‘책’으로 바꿔 생각해 보니, 왠지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입이 없을 때도, 공간이 좁을 때도, 밥을 먹어야 할 때도, 잠을 자는 것과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때에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혹은 어떠한 형태의 활자라도).


활자 중독, 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책은 나에게, 나의 생존을 위한 사치다.


책이 없는 나의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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