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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주무른다는 것

러셀 로버츠,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한 문장

by 김바리

그저 아이 손 잡는 일 하나도 지키기 어려운데,
하물며 꾸준히 지켜야 하는 선행은 어떨까?

- 러셀 로버츠,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세계사, 2015)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전에는 싫어했던 당근을 먹게 되고, 금방 그만두곤 했던 운동을 지속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랑 절대 안 맞아" 하던 생각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그 단단한 벽이 물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빨래 개기, 다른 하나는 안마하기이다.


올해로 열두 살, 5학년인 첫째 조카 호연이는 안마받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축구에 푹 빠진 뒤로는 안마를 해달라는 요구가 부쩍 늘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 친구의 의지는 꺾일 줄 모른다 (이런 끈기를 공부에서도 발휘해 주세요, 라며 잠시 잔소리 모드).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요구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곧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성인이 되어서도 이모에게 이리 곰살맞게 대할까?’, ‘이모가 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올 때, 언제까지 이렇게 반갑게 안아주며 맞아줄까?’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하지만 대체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인) 이유로 아이에게 무신경하게 무의식적으로 짜증을 낸 것이 미안해졌다. 나의 화는 아이와 나의 관계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손을 내밀면 항상 손을 잡아주라고 한다. 아이가 크면 부모 손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을 테니, 그때가 되면 손잡는 순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을 매우 후회할 것이라는 얘기다.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제대로 길러본 적도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두 조카를 곁에 두고 시간을 보내왔기에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어휴, 아이가 손을 내밀 때는 잡아주라고 했으니까 끙차”


괜히 큰언니에게 더 잘 들리게 말하면서 소파에서 일어난다. 내 귀엽고 얄궂은 조카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바지를 걷는다. 그러고는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대자로 눕는다. “이모, 이번엔 몇 분 해줄 거야? 15분? 그러면 왼쪽 종아리 5분, 오른쪽 5분, 그리고 허리 3분, 목 2분, 이렇게 해줘. 알았찌?” (이렇게 상세한 ‘요구'를 받으면 괜히 더 얄밉고 꿀밤 한 대 주고 싶은 건 제가 나쁜 이모라서 그런 걸까요?) 못 이기는 척 툴툴대며 손에 로션을 가득 짠다. 그리고 그의 주문대로 왼쪽 다리 5분, 오른쪽 다리 5분, 허리 3분, 안마를 해 나간다.


아무래도 좋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쌀국수에 들어 있는 고수, 생강차, 빨래를 개는 것, 안마를 하는 것.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와 맞닿아 있는 순간에 억지로라도 해내면서 느끼는 묘한 감정이 있는데, 그것을 짜릿함이라 불러야 할지 성취감이라 불러야 할지, 혹은 봉사라고 해야 할지 정확히 언어로 담아내기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애정을 가진 대상이 내민 손을 오늘도 (불완전한 형태로라도) 맞잡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45살의 이모는 멋지게 자란 호연이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후회할 일이 하나 줄었다는 의미에서 ).




*매일 아침 글쓰기 챌린지 DAY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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