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 또 감사하다,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속 한 문장

by 김바리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라고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떻게 수정하느냐'라는 방향성 따위는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16)


KakaoTalk_Photo_2023-12-06-11-54-11.jpeg


미루기 대장이었던 내가 할 일을 제시간에 해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것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 데에는 ‘할 일을 쪼개서 스케줄에 넣기'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를 테면, ‘영상 콘텐츠 하나를 발행한다'라는 목표를 잡았을 때, 프로세스를 테스트로 한 바퀴 돌면서 한 번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해낼 수 있는 시간과 일의 단위로 쪼갠 후 그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최적화 한 콘텐츠 발행 프로세스는 4회로 쪼개어, 1회당 2시간을 앉아 아이디어 - 스크립트 - 푸티지 찾기 - 녹음과 편집, 그리고 발행까지 (마지막 단계는 4시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뒤로 가면서 내용을 계속 윤색하게 되는데, 이 또한 어느 정도 의도한 과정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천부적인 재능에서 비롯되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렇기에 더 심하게 ‘완벽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믿음을 깨뜨리게 해 준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이 환상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매일매일 꾸준히 조금씩 자신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창작가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라는 책을 펼쳐 또 하나의 상상의 가지를 쳐본다. 오랫동안 창작을 해온 사람이 어렸을 때 주변에 있었다면 나는 완벽주의가 덜 했을까?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한 화가 타인에게 덜 향했을까?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 올 때면 일단 방어적이 되었다. ‘뭘 안다고 그래’, ‘수정해 달라는 게 더 별로구만', ‘도대체 이전과 이후에 차이가 뭐지?’, ‘정렬을 이렇게 바꾼다고 해서 더 나아진 거는 맞나? 시간도 없는데 굳이 이걸 왜 고치려고 하지?’ 이런 생각들. 결국 이런 마찰음은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몇 년의 창작자로서 경력을 통해 얻은 최고의 깨달음은, 내가 만든 창작물은 내가 오래 끌어안고 있을수록 더 독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선험적인 정답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겪어 봐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고 지저분하게’라도 내놓고 피드백을 받아서 개선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고, 또 이러한 마인드로 내 일을, 조직의 일을 해내려고 하지만, 불과 5년 전, 아니 3 년 전의 나였으면 여전히 ‘칫, 뭘 안다고 그래', ‘이게 잘 만든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어. 더 고쳐봐야지'라는 굴레에 갇혀있었을 것이다.


하루키에게는 정말 많은 빚을 졌지만, ‘업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도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도 감사하다, 하루키의 존재에.



*아침 글쓰기 챌린지 3/100

keyword
김바리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구독자 128
작가의 이전글내가 글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