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획은 쓸모없다

칩 히스, 댄 히스, ≪스틱≫속 한 단락

by 김바리
어떠한 판매 계획도 고객과 만나면 쓸모없어진다.
어떠한 교육 계획도 10대들과 만나면 쓸모없어진다.

- 칩 히스, 댄 히스, ≪스틱≫ (웅진싱크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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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수백만 병사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걸까. 군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조직이기에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강제성이 더 강한 것은 사실일 테지만, 그와 별개로 모두가 특정 순간에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계획은 복잡한 작전 상황에서 올바른 쟁점을 고려하도록 해주지만, 솔직히 실제 전투 현장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 인터뷰에서 콜티츠 대령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980년대 미군은 이에 따라 절차를 수정하고 ‘지휘관의 의도 (Commander’s Intent, CI)라는 신개념을 도입했다. CI는 모든 명령서의 가장 윗부분에 첨가되는 짧은 서술로, 계획의 목적과 작전 활동의 바람직한 최종 상태를 명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 상위 체계에서 “남동 지역에서 적의 의도를 분쇄하라"와 같이 관념적인 메시지를 작성해 둔다면 전술적 위치에 있는 대령이나 대위들은 보다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대대 한 명 한 명은 그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계획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작가 사이먼 시넥은 TED 강연 “Start With Why”에서 "왜"로 시작하는 리더가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인간 행동을 주도하는 더 깊은 이유를 활용하기 때문에 더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 문서의 가장 윗부분에 특정 작전을 수행하는 목적과 그것의 최종 상태를 명시하는 것은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함과 동시에 감정에 호소하는 더 깊은 이유를 제시하기 때문에 군인들의 현재의 행동에 더 강한 동기부여를 가져다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래의 계획을 수행할 능력은 잃을지 모르나 그 의도를 수행할 책임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대령은 말한다.


이전 직장에서 KPI가 아닌 OKR로 팀의 목표를 설정하고 추적하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이 CI라는 개념의 실효성이 더욱 와닿았다. (OKR은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의 약자로, 측정 가능한 팀 목표를 설정하고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목표 설정 방법론이다). OKR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자율성'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자율성은 팀의 상위 목표에 기반한 전략의 설정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처음 OKR을 실행할 때 많이 헤매기도 했다. 나의 팀의 OKR을 상위 목표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개인의 것보다는 조금 더 관념적인 방식으로 설정을 해야 이를 바탕으로 추후 계획을 수정해야 할 때가 왔을 때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데, 너무 구체적으로 팀의 목표를 잡는 바람에 전략을 바꾸면서 OKR까지 바꿔야 하는 순간들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처음 무언가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어찌 됐든 약 1년 반 이상 OKR과 함께 하면서 좋았던 점을 열거하라고 하면 끝이 없다(개인의 삶에서도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나의 경우 행복을 결정하는 3요소 중 ‘자율성'이 꽤나 큰 요소를 차지하기에 상황에 따라 스스로 전략을 설정하고 실행하는 데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더 잘 맞았던 부분도 있다. 이것이 바로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전사 차원에서 구체적인 전략까지 전부 정해주고 하나의 How To를 집중해서 실행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는 OKR은 적응하지 어려운 성과 체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휘관의 의도'는 또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압축하여 제시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OKR에서 Key Result를 너무 많이 설정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전사가 그리는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조금 더 구체적인 전략을 제안하고, 그것을 실행할 구체적인 이니셔티브를 ‘스스로' 설정하며, 설정 과정에 있어서 중요도를 고려해 우선순위를 따져 실행하는 것, 그 과정에서 계획에 변동에 생겨도 그 ‘책임'만은 잃지 않았기에 유연하게 계속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가장 이상적이면서 구체적인 목표 달성 방식이 아닌가 싶다. 조직의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 목표 설정에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말이다.



전투 시뮬레이션을 책임지는 전투기동 훈련센터는 지휘관의 의도를 수행하는 장교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질문을 자문하라고 권고한다.

내일의 임무에 우리에게 특별히 주어진 일이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________.

우리가 내일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__________.

- 칩 히스, 댄 히스, ≪스틱≫ (웅진싱크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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