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적당한 거리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속 한 단

by 김바리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두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만 집중했다. 더 자주 대화하고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싶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 사람의 단점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동안 다른 세계와는 멀어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구도 가족도 심리적으로 멀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결국 홀로 남겨지는 나를 보고 가족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오래가는 관계를 위해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연인 관계 외에도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전반적인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선망하던 사람과 일 덕분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누군가를 금방 좋아하게 되는 이 본능은 잘 억제가 되지 않는지 금세 표현을 하고 싶어졌다. 그는 왠지 거리를 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자로 대화할 때면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고, 이모티콘도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혹시 말실수를 했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면 다시 상냥한 사람이었다.


내가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통 방식을, 나의 기준으로 차갑다고 느낀 것이다. 내가 온라인에 비해 오프라인에서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만큼 이 사람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건강한 관계를 위해 일부러 거리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부터는 나 역시 감정 표현을 아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호감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표현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그 기회가 왔다.


어쩌면 내가 내딘 한 발자국이 그의 피부에 생채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가까워지려고 다가간 것이지만 서로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매번 꼭꼭 숨기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껴뒀다가 표현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니 기분이 조금은 더 가벼워진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실성의 보험은 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 발 더 다가갔을 때 벌어질 불확실성의 세계가 더, 좋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고 싶다.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지만 표현한다.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책에서는 불확실성에서 찾는 즐거움을 응원해 준다.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겠느냐면서 말이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 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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