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한 챕터
슬픔, 분노, 무기력, 회한. 이런 감정들의 시기를 지나칠 때면, 우리는 종종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종교,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힌트를 얻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합니다.
프랭클은 책의 서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목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극한의 경험을 통해,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조차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히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는 챕터에서 프랭클은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작업장을 향해 가고 있던 그들에게는 어김없이 발길질이 가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걷던 그때, 높이 세운 옷길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갑자기 그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프랭클의 마음속에 그려진 아내의 모습은 막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났다고 합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 빅터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랭클에게 사랑은 육체를 초월하여 영혼을 채워주는 궁극의 가치였던 것 같아요. 그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죠. 심지어 아내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그의 사랑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프랭클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의 경험은 우리에게 삶의 무의미함을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 바로 '사랑'에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영적인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사랑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역사를 관통하는 영원한 화두인 삶의 허무는 결국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나 고난 속에서 꽃피운 사랑은 더욱 깊고 숭고한 의미를 지닙니다. 프랭클의 이야기는 그런 사랑의 힘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예증이라 할 수 있겠죠. 그의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오늘, 저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가 품은 사랑이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