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나는 요즘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살고싶을까?'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를 두는 것들은 어디에서 가장 잘 누릴 수 있을까?'
미국에 온 지도 어느덧 17년이다. 북부에서 13년을 살다가 2021년 따뜻한 날씨를 찾아 텍사스로 내려왔다.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아왔지만, 요즘 들어 삶의 터전에 대해 깊은 고민이 든다.
미국 생활의 그림자
많은 사람들이 미국 생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미국은 생각만큼 환상적인 곳이 아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크게 발전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비교해보면, 오히려 한국이 나은 부분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의 총기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동네에 살아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총이 일상속에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그 일을 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는 오직 운의 문제일 뿐이다. 특히 반자동 소총으로 몇 초 만에 수십 발을 쏘아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사건을 볼 때마다 공포와 무력감이 밀려온다.
2년 전, 우리 집 근처 아울렛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다. (절대로 위험한 동네가 아니다.) 열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고, 그중에는 한국인 가족도 있었다. 아이 한 명만 남기고 가족 전체가 희생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뒤 나는 한 달 넘게 깊은 우울 속에 있었다. '요즘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구나.' 그 이후로는 그 아울렛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 지금도 야외 쇼핑몰이나 장을 보러 가서 주차를 하고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이면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핀다.
총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양극화, 배척의 분위기, 예전의 미국과는 조금 멀어지는 분위기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작고 지속적인 불안이 자라나고 있다.
나를 돌아보게 된 시간
사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시카고에서 살던 시절에는 너무 추운 날씨에만 집착했다. 다른 좋은 것들은 다 잊고 오직 '춥다'는 부정적인 감정에만 매달렸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 따라다니며,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불만 속에서 살았을 뿐이다.
그러다 텍사스로 이사 온 뒤, 나이를 조금 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를 되돌아볼 여유와 깊이가 생겼다. 시카고도, 서울에서의 대학 시절도 참 좋은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문화적 풍요, 그리고 배움의 기회들. 나는 그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한 채 흘려보냈던 것이다.
한국의 편리함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어디서든 상황에 맞춰 적응하면 되는 문제다.
지금 사는 곳의 한계
남부 교외의 삶은 안전하고 여유로워 보일지 모른다. 아이들은 평점 10점 만점의, 소위 ‘10점짜리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10점이라는 숫자가 진정한 교육의 질을 의미할까?'
잔디밭은 넓고, 학교는 크고 깨끗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와 역사적 깊이는 매우 얕다. 미국은 대체로 역사가 짧고, 먼저 발달한 몇몇 대도시와 그 주변에만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집중되어 있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보다 스포츠에 더 큰 열정을 보인다. 아메리칸 풋볼, 야구. 아이들 역시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면 대화에서조차 소외되기 쉽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한 남편에게는 이런 문화가 익숙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맞추며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음식의 문화, 예술—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깊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터전
나는 안전하고, 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고, 아이들과 함께 풍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곳에 살기를 희망한다.
한국과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느꼈던 깊이.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더 가까운 느낌이다.
물론 지금 이곳에서 사는 동안은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나와 내 가족에게 더 맞는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제 삶에는 감사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저로 하여금 삶의 방향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학교와 마켓, 어디에서든 예고 없이 일어나는 총기 사건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나는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려 합니다. 감사와 희망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