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도시락 싸는 미국 학부모의 입장에서.
'오늘 도시락 메뉴는 뭘로 하지?'는 아이가 있는 부모들 대부분이 매일 하는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아이들 도시락은 “영양가 있게, 골고루, 보기좋게” 싸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듯 하다. 한국은 대부분 학교 급식이 잘 되어 있지만,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공립학교 급식이 거의 패스트푸드 메뉴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서, 많은 부모들이 반강제로 도시락을 직접 싸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서 부모들이 조금 힘을 뺐으면 한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 역시 다양하게 골고루 도시락을 구성했다. 인스타그램 도시락 인증사진들을 참고해서, 대여섯 칸으로 이루어진 런치박스에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채워 보냈다.
하지만 집에서는 잘 먹는 아이가, 다 먹기는 커녕 늘 절반은 남은 도시락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웠고, 무엇보다 점심도시락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의미없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도시락은 '하루 세 끼 중 한 끼일 뿐'이라는 사실.
아침과 저녁을 정성껏 챙길 수 있다면, 점심은 단순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미국 학교의 점심시간은 보통 30분 남짓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밥보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데 더 집중한다. 결국 그 많은 음식을 다 먹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도시락에 ‘메인 하나 + 과일 하나’ 정도만 넣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간단한 김밥 + 사과 2-3쪽
계란 치즈같은 간단 샌드위치 + 오렌지 슬라이스 3-4개
밥 + 김 + 만두
치킨너겟 + 밥 + 채소한가지
단백질 한가지 넣은 샐러드, 작은 과자 후식
-김밥은 복잡하게 싸지 않는다. 계란, 아보카도, 김치(단무지/피클) 정도만 넣으면 충분하다.
-치킨너겟, 냉동만두등은 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는 거의 먹지 않는 메뉴이기 때문에 도시락으로 싸준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먹기 때문에 아이도 먹고싶어 한다. (나 없는 곳에서 가끔 먹으렴~하는 생각으로...)
도시락이 단순하다 보니 가끔 절대적인 양과 영양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아침,저녁 식사를 더 신경 써서 챙겨주면 된다.
매끼니 완벽한 식사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하루의 총량을 생각한다. 하루 세번의 식사 그리고 간식까지 신경써서 챙기다 보면, 내가 너무 힘들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이고, 저녁은 배 고픈 아이들을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풍성하고 균형 있게 준비한다.
그렇게 한다면 점심 한끼정도는 단순해도 충분하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캐릭터 도시락이나 알록달록 풍성하게 채워진 도시락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락은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식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지치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게 결국 아이에게는 더 큰 힘이 된다.
도시락, 힘을 좀 빼주세요. 아침과 저녁을 잘 챙긴다면, 점심은 단순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