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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균형에 대하여

감각을 발전시키는 요리

by Mindful Clara


요리를 오래 하다 보면 ‘균형잡힌 맛’이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뜻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
“자극적인 게 맛있지.”
“조미료/설탕을 그렇게 넣었는데 맛이 없겠어?”
우리가 흔히 들어봤을 만한 말들이다. 아이들이 뭔가를 잘 먹으면

“달달하니까 좋아하네”, “간이 짭짤하니까 잘 먹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한쪽으로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포함해, 본인도 모르게 '균형잡힌 맛'을 좋아한다.

정말 맛있는! -‘진화된 맛’, ‘고급스러운 맛’-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그것은 여러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요리가 복잡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수준의 재료나 고난도의 요리 테크닉만이 '고급스러운 맛'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아주 단순한 요리라도, 요리의 순서와 재료의 비율 그리고 기본맛의(짠맛, 단맛, 신맛, 쓴맛[쌉쌀한맛], 감칠맛) 미세한 조정만으로 훨씬 깊고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 있다.




며칠 전 '토마토 채소 수프'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토마토를 비롯한 여러 채소를 넣고 끓이는 수프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만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모든 채소를 다 넣고 끓인 수프’와 ‘맛의 균형이 잡힌 수프’는 전혀 다르다.

예전에 유행했던 ‘마녀스프’ / ‘해독수프’를 떠올려보면 된다.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은 있을지 몰라도, 맛은 대체로 밍밍했다.
하지만 그런 채소밖에 들어가지 않는 수프도,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약간의 재료를 잘 활용하고 재료의 성질에 맞춰서 요리하게 되면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양파, 당근, 셀러리. 이 세 가지 채소가 국물 맛의 기본 베이스다.
양파를 먼저 충분히 볶는 것이 중요하다.
토마토처럼 산미가 강한 재료를 너무 일찍 함께 넣으면, 양파가 부드럽게 익지 않는다. 양파가 완전히 투명해질 때까지 부드럽게 볶아야 특유의 달큰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살아난다.

그다음은 당근과 셀러리를 비슷한 비율로 넣고 볶는다. 양파의 양을 넘어 서지 않는 것이 좋다.
감자, 양배추, 호박등을 더한다.

적절한 토마토의 사용 역시 중요하다. 아주 잘 익고 즙이 많은 빨간 토마토를 사용한다.(없다면 이탈리아 수입산 캔토마토를 추천한다.)
물을 붓고 허브 몇 가지를 넣어준다. 로즈마리, 타임, 딜, 바질, 파슬리, 페넬 씨드, 월계수 잎등 부엌 서랍장 안에 있는 허브 2가지 정도를 함께 사용해본다. 허브의 사용은, 적은 소금 간으로도 풍부하고 깊은 맛을 만들어 준다.

*herbs combination for soup 이런식으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어울리는 허브의 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요리의 마지막에는 산미를 한 스푼 더한다. 식초 , 레몬즙, 라임즙 등. 들어간 재료와 어울릴만한 산미 한 스푼을 더하면, 국물 속 맛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균형잡힌 맛이 완성된다. (절대로 시어질 만큼 넣는 것은 아니다.)




맛을 만든다는 건 결국 '짭짤하게, 달게, 기름지게' 라는 감각에만 의존하는 일이 아니다.
각 재료의 개성을 살리되, 서로를 방해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건 요리를 오래 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감각이 자란다.
재료는 늘 비슷하더라도, 그 안의 균형을 읽는 눈이 달라진다.

*예를들어 아주 단순해 보이는 오븐 채소 구이라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퀄리티는 천차만별이다.

'오븐예열, 온도, 요리 시간, 재료의 수분제거, 팬위의 배열, 간의 강도'등, 이 모든 것이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요리란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걸 조금 더 깊이 느끼는 일’이다.
매일 비슷한 요리를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맛이 점점 좋아지고, 실패가 줄고, 디테일이 살아난다.

그게 바로 집밥의 묘미다.
균형이 잡힌 한 그릇의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관찰, 시간 그리고 경험이 만들어 준 결과물이다.

https://youtu.be/rRw_h5oP3QU?si=t3S6hZ2wN_A3PU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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