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초에 이별+번아웃을 겪고 박사과정 끝나기도 전에 한국으로 짐을 싸서 가버렸는데...
7~8개월 만에 다시, 그것도 같은 학교로 포닥을 하러 미국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런...)
5월에 M주를 떠날 때,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는 동생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은 나의 사자굴(다니엘과 사자굴의 사자굴)이었다고 말하며... 다시는 보지 말자!! 하고 떠나왔는데 운명의 장난으로(?) 결국 같은 곳에서 다시 포닥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시시피의 저주처럼... 춥고 심심한 이곳은 나와 안 맞는 곳이라며 박사생활 내내 탈출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이곳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 듯하다.
아무튼, 미국에 가기 위해 5월에 이고 지고 온 짐들을 다시 꽁꽁 싸매고, 없어도 되긴 하는데 막상 없으면 불편한 한국에서의 자잘한 생활 용품들을 챙겨서 이민 가방을 꾸려가지고, 저녁 6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제 1공항에 왔다. 그리고 공항서 짐을 부치기 위해 무게를 재보니, 도합 66kg나 되었다! (23kg 수화물 두 개만 실을 수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빵빵하게 싼 기내용 케리어도 있었으니, 모두 합치면 70kg는 족히 넘었을 것 같다.
어찌어찌 over charge를 내고 짐을 다 부치고 나니, 오후 5시 정도 되었고, 보딩 마감시간은 6시 15분이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공항에 배웅 와주신 엄마랑 스쿨푸드에서 마지막 먹풀이(먹기+한풀이)로 돈가스, 떡볶이, 쫄면을 시켜 두둑이 먹고 있는데, 마침 몽골로 출장 가셨던 아빠가 한국에 막 도착하셔서 제2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왔다고 연락이 왔고, 이왕이면 아빠도 만나고 가면 좋으니, 아빠가 내가 있는 1 공항에 오시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5시 45분이 돼도 아빠가 안 오셔서 초조해진 마음에 그냥 출국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때 진짜 영화같이 아빠가 멀리서 짐을 끌고 오셔서 급하게 허그하고 마지막 기도를 하고 헤어졌다. 예상치 않게 정말 극적인 재회와 이별이 되었다. 하하..
그렇게 출국장 줄을 선 게 5시 50분... 근데 짐검사 하는 줄이 길어도 너무 줄어서 도저히 6시 15분까지 게이트 앞에 못 갈 것 같았다.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망연자실하고 대기줄에 끼여있었는데, 그때 들려오는 한마디 "몇 시 비행기 타십니까? 저는 6시 50분 비행기라 그러는데 먼저 가도 될까요?".
어떤, 우리 엄빠 나이대의 노부부가 정중히 새치기로 한 줄 한 줄 앞서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거기에 은근슬쩍 합세해서 "저도 6시 50분 비행이에요 ㅠㅠ 죄송하지만 먼저 좀 갈게요 ㅜㅜ" 이러면서 마치 그 부부의 딸인 듯 뒤로 쫓아가서, 모든 줄을 가르고 짐검사를 받았고, 짐검사를 받고 나오니 6시 가까이 되었다.
그때부터 전력질주를 해 게이트 (게이트가 하필 제일 안쪽이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앞까지 오니 6시 10분이고, 딱 보딩이 시작되고 있었다. 땀이 나고 숨이 차서 헉헉대며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얼레벌레 비행기 안에 들어왔다.
(그 새치기 은인 부부께 너무 감사해서 나중에 인사를 드리려고 봤더니, 비행기 안에서는 찾지 못해 인사는 못 드렸다.. ㅜㅜ)
무튼, 그렇게 무사히 비행기를 탔지만, 모든 challenge가 끝난 것이 아닌 것이, 텍사스 달라스에서 한번 경유해야 하는데, 경유하려면 국내선으로 바뀌기 때문에 다시 70kg 정도 하는 짐을 찾고, 실어야 했는데 그게 또 걱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짐부칠 때도, 엄마와 둘이었는데도 너무 무거워서 낑낑거리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졸도하듯이 12시간 반, 비행기에서 숙면을 하고 달라스에 도착해서, immigration을 통과하는 데, 한 4~50분이 걸린 것 같다. (미국 들어갈 때, 외국인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immigration에서 보통 엄청나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 서럽..) 이때도 배 아픈데 긴 줄을 서고 기다리느라 진짜 진땀 뺐다; 겨우 통과해서 나왔는데, 이미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 거대한 짐들이 내려져 있었고, 달라스 공항에서는 신기하게 짐 들어주는 요원(?)분들이 많아서 내 자이언트 짐들을 손수 카트에까지 올려주시고, 카트에 짐을 실어 다시 짐을 부치러 갔을 때도 짐을 다 내려주셨다. 나는 카트 운전만 하면 됐었다.. (그마저도 휘청거려서.. 짐 부쳐주시는 요원(?)분이 카트 운전면허 안 땄냐고 농담하셨다.. 허허)
아무튼 그렇게 또 얼레벌레 무사히 짐을 다시 부치고, 비행기가 조금 연기되어 한 4시간 정도 공항에서 폰도 충전하고, 샌드위치도 사 먹고, 물도 비축하고 쉬다가 다시 M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보니 새벽 1시 50분이었다ㅠ
들어가기로 한 집의 집주인의 친구로부터 열쇠를 전해받기로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걱정되었지만, 괜찮다고 말해주셔서, 짐을 낑낑거리고 찾고 우버를 불러서 섭리즈 한 집 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때도 우버기사님이 다행히 짐은 다 실어주시고, 도착해서도 엘리베이터까지 짐을 옮겨주셔서 (팁을 더 드리며, 내가 부탁하였다) 거대한 짐들과 무사히 집으로 입성하였다..! 집에 도착해 보니, 글쎄 나의 여리고 노쇠한 이민가방들이 다 찢어져 있었다ㅜㅜ 몫을 다한 가방들아.. 이제 편히 쉬기를.
미국 오기 전에, 짐 부치는 거, 경유하는 거, 새벽에 집에 와서 열쇠를 받는 거, 추운 날씨 그 모든 것이 걱정이었는데 걱정이 사르르 녹듯이 너무 순적하게 잘 도착했고, 심지어 와보니 날씨도 별로 춥지도 않았다. (지구 온난화의 위력인가 보다.)
내가 다시 와야 할 곳이었는 갑다.. 싶을 정도로 얼레벌레 순탄한(?) 미국 입성기였다.
이 여정에서 만난 새치기 은인들, 달라스 공항 요원들, 그리고 우버기사님께 special thanks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예비해 두신 하나님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