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시차적응과 집구하기
약 일주일 전에 박사를 하던 동네에, 7개월만에 포닥을 하러 다시오게 되었다.
아직 살 곳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겨울방학으로 한국에 간 한국인 유학생의 집에 서브리즈(sublease)로 들어와 있는데, 집의 위치가 학교 바로 앞이고, 나의 학과 건물 바로 건너편이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동네였는데, 거짓말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묘하다.
걱정했던 것 보다는 날씨가 춥지 않고, 5년동안 살던 익숙한 동네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식료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집중이 잘되는 카페는 어디인지 등등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했다. 이 동네는 추운 것 빼고(?) 잘못이 없는데 왜 이렇게 싫어했는지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박사 초기에 마음이 힘들어지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고, 졸업할 때까지 습관처럼 말해왔는데.. 그러면서 내가 살던 이 동네를 좋아하려는 노력조차 안해왔고 그 마음이 굳어버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돌아오니 이 동네가 이상하게 좋고 반가웠다. 이번에는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 이 동네에 대한 기억을 업데이트 시켜봐야겠다.
무튼, 미국에 다시와서 일주일 정도 사이에 내가 했던 일을 기록해보자면
1. 앞으로 살 아파트를 구했다.
박사를 하던 곳에 다시 포닥을 와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다시 적응할 필요가 없고, 동네와 학교를 explore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점인 것 같다. 5년동안 M주, 정확하면 학교가 있는 동네에 살면서 3번의 이사를 했었고, 4개의 집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얻은 것은, 내가 어느 동네랑 잘 맞는지, 그리고 꼭 갖추어야될 집의 조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list up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나에게 잘 맞는 동네(neighborhood)는, 걸어서 장보기가 편해야하고, 주변에 카페들이 1~2개 있고, 가까운 곳에 산책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바닥이 마루바닥(hard floor)이고, 집 안에 세탁기가 있고, 보안이나 보수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플러스로 아파트 내의 Gym에 천국의 계단이 있는지도! 조건 중 하나였다. (천국의 계단이라도 안타면 정말 앉아만 있다가 단명할 것 같았으므로..)
이렇게 딱 맞는 곳이 있어? 라고 생각이 들찌 몰라도 놀랍게도 찾아보면 있다!! 대신 학교와 좀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 가격대가 아주 싸지는 않다는 점 등등의 단점은 감수해야한다.
위에 적어놓은 사항들을 기준으로 한국에 있을 때, 인터넷 서치로 5~6개의 아파트를 골라놓았고, 아파트 투어도 신청해 놓았다. 그래서 미국에 온지 이틀차부터 아파트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 중에 쏙! 마음에 아파트를 찾았고, 몇일 고민해본뒤, 그 아파트의 스튜디오(원룸)가 빨리 없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져 나도 그냥 계약을 해버렸다.
2. 시차적응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놀랍게도 미국에 온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시차적응을 못하고 있다. 미국 처음왔을 때 딱 30살이었는데, 그 때 이후 매년 시차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시차적응을 하기위해, 마이너스 10도의 날씨지만, 하루에 꼭 1시간 정도는 걷기도 하고, 밤에 잠이 안와도 누워있어보고,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이상한 시간에 건전지가 꺼지듯 잠이 들고, 또 이상한 시간에 밥을 먹고 그러고 있다. 그 와중에 12시 31일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저녁 8시 넘어서 일어나서, (나는 당연히 아침 8시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 8시였다.) 거의 하루를 skip해버렸다.. 그것이 나의 2024년 마지막날의 기억이다. 1월 5일이 된 오늘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니, 아직까지 시차적응은 실패다.
3.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사실 나는 미국에 와도 영어쓸 일이 많이 없다. 특히 나는 학교내에서 연구하는 일을 하고, 대부분 재택으로 이루어지고 또 팀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교수님과 1대 1로 일을하기 때문에 영어쓸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박사 때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친구의 98%가 한국인이었기에, 교수님들과 미팅할 때 빼고는 거의 한국어만 썼다. 생각해보면 미국인들과 친해질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변명이라면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던 나는 여가시간에는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했다. 영어를 쓰는 것 만으로 엄청나게 에너지가 쓰이는 느낌에 쉬는 느낌이 안났기 때문이다.
이번 포닥기간에는 한국어를 줄이고 영어를 더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나를 내몰아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을 위해는 나랑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자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학교에서 사람들과 professional이야기를 하는 상황에는 자주 얼고(?) 긴장을 많이하기 때문에, 좀더 casual한 상황이 더 잘맞겠다고 생각을 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편하게 대할 수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미술학원! 다행히 이사갈 집 근처에 미술 학원(atlier)이 하나가 있어서 토요일 오후반에 등록했다.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나의 미국에서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colorful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