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이란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부끄럽지만 박사를 하면서 인생 최대의 불안감, 그리고 더불어 자존감의 하락과.. 그로 인한 인간애의 상실을 경험했던 것 같다.
이것을 가장 선명하게 느낀 사건이 나의 고등학교 베프와의 절연(?)이었다.
내가 박사로 미국을 갈 무렵, 내 고등학교 때 친구 H는 이미 타주에서 미국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100% 재택일이었기에, 내가 박사를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났을 즈음, 나와 가까이 있고 싶다며 내가 있는 M주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던 그녀를 가까이에서 care 할 수 있다는 점과, 어느 하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던 나의 상황에서 내 편이 한 명 생긴다는 생각에 그녀가 내 가까이로 이사하게 되는 게 반가웠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에서 잠시 쉬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이사 올 때 쯔음부터 우리 사이는 삐걱되었다.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사소해서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남겨본다. 그 당시 한창 미국에서는 코로나 + 마스크 부족 문제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한국에서 오는 그녀가 날 위해 마스크를 챙겨 온다고 하였다. 나는 너무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출발할 때쯤 되자, 자신은 어떤 마스크가 좋은 마스크인지 모르니 우리 집에서 마스크를 구해서 자기한테 보내면 전해준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데, 평소 약간 건강염려증이 있어서, 건강 관련 정보에 민감한 그녀가 그런 말을 하니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결국은 내 마스크를 준비해 주는 게 귀찮았나? 하면서 서운한 마음이 차올랐다. (이제 생각해 보니 유치하긴 하지만.. 그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맞물려서 친구한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우리 엄마가 마스크를 구해서, 친구에게 보내줬고, 친구는 나에게 그 마스크를 전달해 줬다. 그리고 그녀의 캐리어는 (본인의) 마스크로 가득했었다. 그러면서 친구는 캐리어에 자리가 넉넉한 것도 아닌데 내 물건을 가져와줬다는 것만으로 내가 고마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미국에서 마스크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는 그녀가 본인 마스크만 챙기고 내 마스크를 챙기는데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때 나의 마음은 그게 너무 서운하게 느껴졌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내가 사는 동네로 온 후, 만날 때마다 늘어놓는 걱정과 불안을 들어주는 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그때 나야말로 펀딩을 구하지 못해, 다음 학기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기에... 그런데 나의 상황을 터놓는 게 편하지 않아서, 내 사정은 말하지 않고 그녀의 걱정만 들어주고 공감해 주자니 좀 벅찬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녀는 원래 운전을 했지만, 내가 사는 주에 이사 온 후로는 차를 사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친구의 장 보는 것까지 내가 챙겨주게 되어.. 친구의 라이드까지 나의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 나만 부탁하는 것도 이미 충분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플러스원까지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힘든 일을 말했고, 나는 내 개인적인 스트레스에 그녀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쌓여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한국에 잠깐 가있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혼자 내가 사는 주에 남게 되었고, 그녀도 조금 있다가 다른 친구가 있는 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큰 언쟁이 오가거나 한건 아니지만, 서로 힘든 점이 먼저가 되어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정말로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웃곤 했는데, 내 상황의 짐에 눌려 친구가 짐으로 느껴졌던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암묵적으로) 절연을 했고, 연락이 뜸해졌다.
그렇게 박사를 하면서 나는 친구를 잃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사건으로 몇몇 친구들과 더 멀어졌다.
박사가 끝난 지금, 다행이게도 이 친구와 다시 만나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한테서의 받은 상처는 다 치유할 수 없겠지만, 살아가면서 더 좋은 기억으로 이때의 시간을 덮을 수 있기를...더불어 박사때 내 상황에 휩싸여 소훌했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회복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