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ugh, but not entirely unhappy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그동안 일이 폭풍같이 몰아칠 때도 있었고, 마음과 감정이 파도처럼 요동칠 때도 있어서 조용히 앉아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너무 기뻐서 다양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다시 현실에 파묻혀 글쓰기 엄두조차 못 내는 내가 되었다.
아무튼 근황을 적어보자면,..
어느덧 미국 포닥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차가 넘어간다.
그동안 놀라울 만큼 박사 과정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 아직 끝낸 논문도 없고(계속 revision 중), 그럴듯한 그랜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도 아니다. 포닥으로 살면서 하루 종일 연구만 하면 논문도 빨리쓰고 아이디어도 샘솟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나를 보며 다시 한번 연구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You are good. Don’t do that to yourself."라고 하셨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건 한국인의 특징일까? 교수님은 자기 의심과 자책을 반복하는 나의 성향을 알고,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자기 의심이나 자책은 스스로를 더 밀어붙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엔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보다는, 내 마음을 토닥이며 연구도 하고 미래도 준비해나가고 싶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나의 연구 생활이고, 미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운 좋게도 좋은 미국인/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박사 과정 때는 한인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만 어울렸는데, 포닥 때는 미국 교회에 다니면서 한국인들과 접점이 줄었고, 대신 미국 교회의 ESL 프로그램과 학교 안의 대학원생/포닥 대상 크리스천 펠로우십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행히 교회에서 매칭해준 선생님과 말이 잘 통하여 친구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이야기하고, 교회에서 예배도 함께 드리며 기도제목도 나누게 되었다. 미국에서 6년을 살았지만, 미국인과 이 정도까지 관계가 깊어진 것은 처음이다.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그동안 영어를 못해서 친구가 생기지 않았던 건 아닌 것 같다. 마음이 편하고 내 이야기에 관심 있는 사람과는 영어가 잘 안 되어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 그동안 친구를 못 만든 건, 그만큼 마음이 편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학교 내 크리스천 펠로우십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기독 서적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에도 가게 되었다. 그 모임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오는데, 국적에 상관없이 대학원생들은 정말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모임에서 나눈 경험들과 공감하는 말들이 큰 위로가 되곤 한다. 기독교 모임에서 이렇게 힐링되는 느낌을 받은 것도 오랜만이고, 판단보다 위로에 집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외로운 마음이 한결 덜해진 것 같다. 역시 상황이 비슷한 사람들이라 고민을 털어놓기도 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쉬운 것 같다.
박사 과정 동안의 미국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에 포닥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지 못하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동안 너무 소심해서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부담을 느꼈었는데,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과는 한국인 친구들과의 관계만큼 가깝거나 애틋하진 않지만, 그건 그것대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아무튼 연구에는 큰 진전이 없지만, 미국 생활 자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연구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