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카페 죽순이가 된 나의 이야기
2019년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후, 딱 한 학기만 정상적으로 대면수업을 듣고, 그 이후로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수업뿐만 아니라 모든 TA와 RA일도 운 좋게(?)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박사 졸업 때까지 쭈욱 재택근무로 진행하였다. 박사 디펜스까지 zoom으로 진행하여 박사과정의 마침표를 찍었으니, 나의 박사과정은 그야말로 모든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학창 시절부터 항상 공부는 도서관에서 끝내고 집에서는 쉬었던 나는, 집에서 집중해서 공부하고 일하는 게 익숙지 않았고, 박사과정 내내 시간관리와 집에서 혼자 집중해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계속 있었다. (그 와중에 재택으로 진행하던 RA job에서 일(quality of work)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다며 잘린 적도 있다.)
코로나가 정말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박사 4년 차부터 많은 것이 정상화되었고, 다시 대부분의 수업은 대면수업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과에서의 연구일은 아직 mainly 재택근무로 이루어지고 있다. public health라 그런가.. 계속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추세이다. 포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쭈욱 화, 금이 필수 출근날이고 그 외에 날들은 자유롭게 일하는 게 가능하다. 이것은 교수님들한테도 해당되는 사항이라, 우리 학과 사무실은 화, 금 빼고는 항상 거의 텅텅 비어있다. (다들 재택으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 일하면 금방 지치고, 집중이 잘 안 되는 터라, 처음에는 거의 매일 사무실을 나갔지만, 차가 없는 뚜벅이인 내가 45분 걸어서 사무실에 가는 것은 굉장한 결심과 의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포닥 3개월 차부터 (?), 대부분 주 2회만 사무실에 나갔고, 그 외의 날들은 집중할 수 있는 여러 장소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가 한 달 전쯤부터는 중고로 자전거를 구한 이후 다시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었는데,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눈이 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시 자전거로 출근이 어려워졌고, 내가 자주 가던 집 앞 카페로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포닥을 시작하면서 일부러 큰 카페가 있는 동네에 집을 구했던 나다. 집 아닌 곳에서 일할 장소가 있는 것이 중요했기에..)
카페에 가면 주로 항상 같은 음료를 시키고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일하고 가곤 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찾은 카페에서 또 라테 한잔을 시키고 내 이름을 말했더니 (이 카페에서는 주문할 때 이름을 말하고, 음료가 완성되면 이름을 불러주는 시스템이다.) 오랜만에 본 카페 직원이 "은? 너구나, 사람들 (카페 직원들)이 왜 요즘 은이 안 오냐면서 궁금해했어."라고 반겨줬다. 그냥 서비스차 원인 멘트였겠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맨날 거지꼴로 와서 하루 종일 죽치고 가는 나를 인지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나를 기억해 줬다는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함께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갑자기 여러 감정이 섞여 홀린 듯이 팁까지 주고 다시 카페에서 일을 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카페야 나를 받아줘서 고맙다. 직원들이 추레한 나를 기억해줘서 고맙다 (부디 죽순이라고 욕하지 말아줘...나도 갈데가 없어서그래...).
F#### 카페 죽순이 오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