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너는 행복하니?
근 10년간 관심도 없었다.
마블 영화가 무엇인지 그들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아이들을 키우고 생업에 전념하느라 훌쩍 뛰어넘은 내 세계가 멀티버스였다.
애들한테 마블 옷을 사입히고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영화는 관심 밖이었다.
아들들이 웬만한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즈음 도장 깨기 하듯이 마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자, 서로 얽히고설킨 그들만의 리그에 오신 걸 환영한다.
다른 세계관은 잠시 접어두고
가장 최근에 본 마블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혼돈의 멀티버스'이다.
최애 배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천재 외과의사이자 최고의 마법사라는 설정에 역시나 찰떡이다. 2편에서는 모든 유니버스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존재하는데 그의 사랑인 크리스틴 팔머도 역시나 존재한다. 현재의 세계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녀의 결혼식에 초대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칼자루를 쥐어야 하는 당신이기에 존경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며 에둘러 거절하는 그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단지 겁이 났을 뿐이라며 every universe의 크리스틴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이미 꿈속에서 그는 수많은 세계의 자신을 보았고, 유니버스의 균열을 깨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다. 심지어 결혼하지 않은 크리스틴을 만났을 때도 진심으로 사랑한다 말할 뿐 본인의 할 일을 묵묵히 한다. 오히려 그 균열을 깨고 Dream Walking으로 다른 세계의 '자신'의 삶을 빼앗으려는 완다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현재 지구에서 세상을 구한 듯 하지만, 부모와 오빠를 잃고 종국엔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게 되는 그녀에겐 오직 다른 세계 속 자신의 아들들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은 단 하나.
Are you happy?
흔한 히어로 영화라 치부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질문은 내게 끈끈이주걱처럼 매달려 있었다.
인간에겐 매일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고, 가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뚝뚝 넘쳐흐른다.
(나는 특히 그렇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다며 후회하고 머릿속에선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때의 난 최선을 다한 거다. 누구라도 이보다 더 잘했을 수 없다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흔히 두 가지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아이템이다. 그만큼 우리 인생이 그러하리라. 가는 길을 최선이라 믿어보지만 마음 한편은 겪지 않았던 다른 삶을 위한 물음표를 남겨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 지금도 괜찮아. 넌 할 수 있는 걸 한 거야."
'그때 이랬어야지. 왜 바보처럼 하지 않았어?'
스크루지 할아버지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경험한 후 진짜 현재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며 주변과 함께하는 인생.
화려한 싱글남의 삶과 사랑하는 여인과 가족을 이루며 타이어 판매원으로 사는 삶 모두를 경험하고 결국 현실에서도 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인생.
이 모든 선택은 우리 몫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행복하냐는 그것. 주변에 함께할 사람이 있느냐는 그것이 아닐까.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쉬움은 있고, 보지 않은 또 다른 삶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현재 살아가는 이 시간이 내가 만들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일 거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롯한 나만의 시공간.
내가 함께 행복하고 싶은 지금 곁에 그 사람들.
영화 마지막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크리스틴이 준 선물인 시계를 수리한다.
깨진 유리를 섬세하게 시공하고 시간도 맞춘 후 조심스럽게 서랍 속에 넣어놓는다.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생텀 밖으로 나온 후 다음 모험을 준비한다.
내가 살아온 소중한 과거.
새로 만들어갈 나만의 미래.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므로.
Are you happy?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십니까,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