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먹힌다.
티끌 모아 정말 티끌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들을 비틀어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 한 개그맨이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도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늘 같은 말만 듣고 살던 사람은 약간만 다른 말을 들어도 희열을 느낀다.
재미있게 살아야 글도 재미있다던데, 난 재미있게 살고 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긍정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가라앉는 날은
글이 지나치게 슬프거나 자조적일까 봐 조심한다.
영화도 슬픈 영화는 보지 않는다.
너무 무서운 공포 영화도 보지 않는다.
좋아하는 배경, 혹은 그때 그때 끌리는 영화.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이 영화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느냐이다.
웃음과 가벼운 일상의 유희만 있으면 된다.
결국 위트와 재밌는 반전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면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다.
나에겐 이런 영화 같은 반전이 필요하게 되었다.
제부는 앞으로 목사님이 될 예정이다.
지금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동생과도 신학대학에서 만났다.
3개월 정도 있으면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게 된다.
젊은 신학도에게 온 마음으로 돕는 분들이 교회엔 있다고 한다.
나이답지 않게 점잖고, 생각이 깊은 제부는 내가 봐도 아들 보는 양 흐뭇하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동생을 잘 챙기는 것도 참 뿌듯하고 고맙다.
술을 좋아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남자인 남편과 형님, 동생 사이로 술 한잔 기울인 순 없지만
함께 이야기가 통하는 그런 사이이기도 하다.
단지, 동생도 남편을 따라 서울로 가게 된다는 것이 슬픈 생각이 든다.
일곱 살 나이차가 나는 동생을 아기 때부터 귀여워했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안아서 미끄럼틀도 태워주던 기억이 난다.
잘 걷는 네 살 때는 손을 잡고 15분 거리 할머니댁을 걸어갔는데
동생이 잘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언니가 안아줄게' 하며 품 안에 안고 걷기도 했다.
일곱 살 차이어도 둘 밖에 없는 자매 사이인지라
투닥투닥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들 때 고민을 들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한 번씩 생각이 맞지 않는 순간이나, 내가 무던함으로 세심함을 놓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해 주고 공감해 주는 동생이 있어서 든든했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도 참 좋았는데
갑자기 결정된 서울행에 축하하면서도 어리둥절이다.
같은 지역, 가까운 곳에 사는 게 참 든든했는데 벌써 이별을 생각하니 참 뭐라 해야 할지.
이러고 보면 가족들과 지지고 볶고 할지라도 서로의 사정거리에 살 수 있는 건
행복이 아닐까 싶다,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행복.
하지만 서울에 당연히 갈 이유가 생겼으니 기쁜 일로 생각해보려 한다.
여행을 갈 때도 동생 부부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갈 것이고
함께 근처의 좋은 곳도 갈 것이다.
조카들도 이모 덕분에 더 편하게 서울을 갈 수 있겠지.
오랜만에 만나면 더 반가울 것이고, 어쩌면 이 핑계로 지금보다 더 전화도 자주 하고
연락도 자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오히려 전화위복 아닐까.
남은 가을과 겨울은 동생네 부부와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겠다.
이상주의자 언니에게 현실도 일깨워주는 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너.
격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