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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

by 마음돌봄

2박 3일의 휴일의 중간

여행을 가는 대신 마라톤에 참여했다.

물론, 내가 아닌 큰 아이가.

중학생인 큰 아이는 나름 고군분투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힘들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여느 아이처럼 '내일 학교 안 가고 싶다',

'휴일이 하루 더 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월요일이 한글날이라서 쉬지 않았다면

일요일 아침 마라톤을 가는 게 슬펐을 거라는 아이는 얘기했다.

이번에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하는 것도 제대로 알려줄 겸

함께 길을 나섰다.




라이팅과 픽업에 익숙한 아이들이 많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다.

하지만 벌써 열다섯 살이니 환승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지.

아침엔 환승할 자신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공항 건너편에 내렸다.

공항 입구에서 출발하는 마라톤 코스는 5km, 10km, 20km 코스가 있다.

파란색 마라톤 티셔츠에 번호판을 부치고 반 친구들을 찾았다.

8시 15분. 모이는 시간.

아침부터 마라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엄청났다.

초등학생부터 노인 분들까지.

가족 단위부터 친구, 연인들, 그리고 여러 학교 학생들.

사실 노인 분들이라고 해도 뛰시는 모습이 나보다 훨씬 젊은이다.

근육량도 상당하다.

물렁물렁 울퉁불퉁 나의 살을 바라보며 조금 뻘쭘해진다.

하하. 오늘은 아들을 데려다주고 온 거니 반성은 이만하고.

아이를 발견한 친구가 꾸번 인사를 하고 반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께로 데려간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기에 공항 라운지 커피숍을 찾아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엔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오랜만에 공항에 오니 떠나려는 사람들의 간질간질한 설렘이 느껴져서 덩달아 기분이

몽글몽글 싱숭생숭해진다.

대부분 제주도나 양양, 서울, 군산 등 국내선이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가족들, 부모를 따라나선 어린아이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테이블에 앉은 커플들.

2층으로 올라와 커피숍에 자리 잡고 앉았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마라톤 5km는 그 정도면 끝이 난다.

이 시간 동안 읽을 책을 준비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어니언 베이글의 조합이 썩 괜찮다.

목 넘김이 따끔해지는 요즘 계절에 참 제격이다.

요즘은 한 번 책을 읽을 때, 인덱스로 마음에 닿는 문장은 표시를 해 둔다.

그리고 리뷰를 쓰거나, 재독을 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 되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만 하면 소용이 없고 꼭 한 가지라도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에만 의존할 수가 없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다가 종이 책으로 소장해도 좋겠다고 판단해서 구입한 책을 차분히 읽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편안한 순간 중 하나는 이런 때이다.

아이들이 학원이나 기타 활동을 할 때 짬 내어 읽는 책의 맛이 꽤 달콤하다.





저자처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읽다 보니 벌써 10시가 훌쩍 넘었다.

마라톤의 피니시 라인을 향해 뛰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건 싫어하고, 특히나 육체적 고통이 가해지는 일은 싫어하는 나.

피부과를 열심히 다닌다는 나이이지만, 시술받고 아플 바에 차라리 안 하고 말겠다며 선언하는 나.

마라톤을 한다면 뛰는 사람들을 보니 나는 지금은 꾸준히 뛰어야 하는 때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고 싶어서.

김미경 강사는 한 강의에서 "나를 밥 먹이고 살게 하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내 밥을 먹게 해주는 삶.

워라밸이라고 하기보단 워크 = 곧 라이프 인 삶이 요즘은 맞다는 생각이다.

'워크'하는 시간을 견디고 휴식을 취하고,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얼른 은퇴하겠다.

이런 것보다 이젠 '좋아하는 일' ,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하는 일'로 밥 먹고 살고 싶다.

'워크' 자체라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 있는 휴식'이 되는 삶.

직업에 대한 경계를 두지 말고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고정 수입만 되고, 나쁜 일만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작가로서의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면

일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 기쁘다.

물론 쓰리 잡까지 해본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의 양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적당한 일과 삶이 윤활유가 됨은 분명하다.

마라톤이 끝이 있는 것처럼

분명해야 할 일을 계속한다면 끝은 오기 마련이고, 결과도 있기 마련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의 말처럼 '와야 할 것은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다.

그러니 계속 선을 행하면 된다.'


이제 10시 20분이다

마라톤을 완주한 아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넬 시간이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고

마라톤을 완주한 아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5km만큼은 쌓였을 거다.

더불어 나의 마라톤도 계속되고 있다.

끝까지 완주해서 꼭 피니쉬 라인을 통과해야겠다.

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활짝 웃는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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