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카레를 한가득 끓여놓곤 하셨다.
엄마는 동네 입구에서 큰 잡화점을 운영하셨다.
지금으로 보면 대형쇼핑몰이나 온라인 쇼핑몰이 하는 역할이다.
화장품 판매, 샴푸나 바디용품, 그리고 여자들 옷까지.
홈쇼핑도 쿠팡도 없던 시대이기에 오프라인 매장은 잘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항상 엄마의 샵이 보였다.
'집에 카레 해놨어. 가서 먹어.'
엄마 얼굴을 보고, 학원을 다녀온 후, 카레에 밥을 먹었다.
다른 반찬은 꺼내지도 않는다.
나의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 엄마를 기다리며 저녁을 먼저 먹었다.
교대 근무를 하셨던 아빠는 퇴근 전인 경우가 많다.
넓은 파스타 접시에 흰 밥과 카레를 듬뿍 올려놓았다.
감자를 유달리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많은 양의 감자를 넣어주셨다.
노란 카레 향은 지금도 그때의 나를 소환한다.
6시 10분에 시작하던 만화 영화 '히맨'을 보면서 카레밥을 먹는다.
카레처럼 노란 머리카락의 단발의 왕자 히맨은 성경 속 '삼손'처럼 힘도 세고, 정의로운 왕자다.
악당을 물리치며 끝나는 만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마음이 안심이 됐다.
감자 지분이 많던 카레에 브로콜리를 넣어 먹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다.
한동안 엄마는 많은 양의 양파를 계속 볶으고 볶은 카레를 하셨었는데, 티브이 드라마를 보다가
브로콜리도 카레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트리(나무 말고 tree가 더 어울린다.)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브로콜리.
처음 브로콜리 카레를 본 건 채시라, 최수종 주연의 한 드라마였다.
깔끔한 접시 위에 정갈하게 놓인 카레라이스(어릴 때 '카레라이스'라고 불렀다.) 몇 숟갈 먹은 두 주인공은
가벼운 말다툼을 하다가 여주인공이 떠난다.
아마도 장소가 극 중 최수종 배우의 부엌이었던 듯하다.
'맛있는 카레를 놓고 가다니, 윽 먹고 싶어. 브로콜리 카레는 처음 봤는데.'
남녀 주인공의 연애 서사보다는, 예쁜 접시 속 브로콜리가 눈에 맴돌았다.
선명한 초록색이 쨍한 게 맛이 있어 보이지도 없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뭔가 맛보고 싶은 싱싱함은 여실히 느껴졌다.
두 번째로 브로콜리를 본 것도 역시나 드라마에서다.
세월이 훌쩍 넘어 2010년 이던가.
이보영, 지현우, 남궁민 배우 주연의 '부자의 탄생'이란 드라마였는데(와, 이럴 땐 기억력이 좋다.)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재벌남 남궁민 배우 집이던가.
여주인공인 이보영을 초대해서 브로콜리가 유난히 돋보이던 카레를 접시 위에 내놓은 장면이 기억난다.
역시나 브로콜리는 싱싱해 보였고, 파릇파릇했다.
어쨌든 나도 그 후로 양파, 당근, 감자 등등 각종 채소를 잘게 썰어 넣어서 카레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란 카레를 접시에 담고, 살짝 데친 브로콜리를 데코처럼 올려서 먹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고 먹는데
카레를 맛이 없다고 했다.
어떤 날은 물이 너무 많다.
또 어떤 땐 너무 되직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자는 듬뿍이고, 초록색의 브로콜리는 예쁘다.
채소를 먹었다는 만족감도 상당하다.
카레는 강황가루가 들어가서 몸에 좋다니 말할 필요도 없지.
잘 익은 김치에 카레만 있으면 한 끼도 뚝딱이다.
브. 로. 콜. 리
뭔가 라임이 맞는 이름도 맘에 든다.
절치부심. 이열치열. 인과응보. 과유불급. 너랑 나랑.
브로콜리는 나무 모양 그 자체일 때 가장 좋다.
생과일주스로는 절대 만들어먹지 않으리.
나의 작은 나무 브로콜리가 계속 파릇파릇했으면 좋겠다.
노란 카레 속에서 더 돋보이는 브로콜리.
초록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