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까짓 낮잠, 내가 자겠어.

by 마음돌봄

거 희한하게 낮에 잠을 자면 소르르 빠져드는 맛이 있다.

어릴 때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면 나도 모를 슬픔이 몰려와서 울곤 했었다.

자칭 타칭 집안 공식 울보였던 나는 꽤나 엄마를 힘들게 했었다.

지금도 유치원 때 사진을 보면 울고 난 뒤라 얼굴이 빨개져서 찍은 사진이 많이 있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낮잠 자고 일어나서 우는 아이.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고 멜랑꼴리한 그 기분을 지금도 표현할 수 없다.

단지 다 크느라 그래. 감정 조절이 안되었나 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랬다.




낮잠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건 두 아이를 키울 때였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잠을 잘 때는 그 사랑이 몇 만 배는 불어나는 것 같다.

나도 같이 누워 잠을 자면 좋으련만

뭘 하겠다고 노트북을 꼼지락꼼지락, 아니면 티브이를 틀어 드라마를 홀짝홀짝 보다가

아이가 일어나는 울음이나 기척이 들리면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왜 내가 같이 자지 않았나 후회하곤 했다.


자면 자는 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잤다고 후회.

엄마가 옆에서 자니까 아이들은 낮잠도 더 길게 잤다.

그럼 저녁에 빨리 안 자니 그것도 후회.

유튜브라도 있었으면 10시 정각에 하는 드라마에 대한 미련도 없었을 텐데.

시간이란 게 몽땅 아이에게 가야 하는 그때에는 잠깐의 낮잠.

즉, 내가 선택한 시간에 잘 수 있는 낮잠이 너무나 고팠다.






이젠 아이들도 엄청나게 컸고, 엄마가 피곤해 보이면 잠을 자라고 권할 정도가 되었다.

뭐 하루 정도나 1박 2일 잠깐 어디를 가도 보고 싶어 하지만 괜찮은 정도가 되었다.

드디어 낮잠을 자도 거리낄 것이 없어진 때가 도래한 것이다.


오늘만 해도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닭처럼 졸았는데, 편안하게 잠을 청하며 담요를 덮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남편이 이불까지 덮어주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세상은 날 가만두지 않지.

꼭 낮잠을 자면 전화가 온다.

프린터가 노트북과 연결이 안 되어 원격 지원 상담을 신청했는데 전화가 온다.

도서관 여행을 신청해 놨는데 그 또한 전화가 온다.

못 간다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얼른 전화를 끊는다.

정말 빠르고 성실한 프린터기 회사는 문자까지 친절하게 남겨놓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순간

그래도 원활한 나의 job을 위해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해서 프린터기 문제를 해결했다.





가끔은 낮잠을 자는데 한 동안 연락 없던 지인에게 전화가 오기도 한다.

마치 너 낮잠 그만 자렴. 너 오늘 낮잠은 텄어, 얘.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른한 오후,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예전처럼 나를 찾는 어린 아기들이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쌩유베리감사하지만

아직 멀었다.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지 않는 순간이여.

읽던 책을 옆에 두고 잠시 수면의 세계를 방문할 특권이여.

결국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잠깐 낮에는 스마트폰은 꺼놓자.

낮잠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관계, 인과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