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기에 있고, 저 숙녀가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니나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백작이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인류에겐 적당한 정도의 슬픔이 있단다.
- 모스크바의 신사 -
그렇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슬픔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사정이 다 있다.
오늘 만난 친구 A는 뭔가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 잘 맞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 안 해서 지금 이렇게 배우러 다니다보다고 말하는 A.
미술 심리를 배우러 가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같이 배우는 동료들이
대형 학원 원장님, 주부, 선생님, 자영업자 등 다양하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거의 일반 공무원, 교육 공무원, 아님 자영업자인 것 같다고.
사실 직장 생활을 끝까지 버티고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여자의 경력은 끊긴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면 드디어 복직을 하거나, 복직과 휴직을 반복하고, 자아 찾기에 나서게 된다.
직장인들은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운동 다니는 엄마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네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열심히 아파트에서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짬짬이 방과 후 교사나 도서관 수업 혹은 각종 알바 등으로
일을 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수입과 없는 소속감에 공허하기도 하다.
팔자 좋아서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댁 대소사와 혼자 계신 친정어머니를 챙기느라 바쁘기도 하다.
미술 심리를 배우다 보면 늘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대형 학원 원장님의 그림에선 늘 남편이 집을 나가있거나, 나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미국 유학을 보낼 정도로 부유하지만 부부 관계가 소원하기도 하고
주부이지만 마냥 편한 게 아니라 마음이 공허하기도 하다.
자영업자라서 사장님이지만 사실 매달 나가는 월세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결국 A와 동료들은 이 자격증을 따서 어디에 쓸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프로필에 하나 더 채우거나 운영하는 학원 혹은 수업에서 적용하는 것 하나.
또 더 깊이 있게 공부하거나 미술심리센터에 취직하는 게 또 하나일 수 있는데
과연 자격증을 위한 자격증은 아닌지 요즘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다 못한 공부에 대한 한을 푸는 것인지
아니면 내 경력과 프로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수단인 것인지 고민도 되고
아이들을 더 교육시켜야 하는데 나한테 투자하는 게 맞나 고민되기도 했다.
'강의 쇼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행여나 내가 그 '호갱님'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배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 읽고 있는 책,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말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학생 시절처럼 수능 시험 통과라는 공통의 목표는 없지만
모두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나라도 더 하려고 애쓴다.
그 무수한 노력들이 하나의 고리가 되어 연결될 수 있도록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오늘도 이 땅의 엄마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다면 너무 거창한 얘기일까.
지금 부는 가을바람처럼 마음에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면
열심히 잘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