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처음이었다.
생일이 이렇게 챙겨야 하고 축하받는 날이란 걸 안건.
자기 생일에 축하를 받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데
결혼 전 친정에선 간단히 케이크를 놓고 밥을 먹는 정도였다.
오히려 생일은 친구들과 보내느라 더 바빴다.
그건 20대였기 때문일까.
25살, 미국으로 남편과 유학을 간 대학 동기를 제외하곤 나의 결혼은 이른 편이었다.
스물여덟의 신부가 된 나는 마치 소꿉장난하듯 결혼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대학에서 교양 필수로 부모의 역할, 결혼 후 달라지는 삶, 출산이란 무엇인가.
시댁과 친정의 양다리 특급열차 등의 제목으로 꼭 강의가 개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K - 유부녀가 되었다.
결혼 초, 열심히 생일을 서로 챙겨주는 시댁 식구들을 보며 친정 식구들도 그만큼 챙겨야 한다고
똑같이 챙겼다.
당연히 외식이든 집에서든 거하게 식사를 했고, 선물을 나누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서는 생일날은 더욱더 당연히 모이는 축제 같은 것이 되었다.
지난 동생 생일, 동생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이틀을 보냈다.
용돈을 좀 더 많이 보내고 이렇게 생일이 지나가나 보다 생각했지만 남편, 즉 동생 형부의 생각은 달랐다.
'아파서 못 만났는데, 당연히 이번주에 처제 생일 식사 해야지.'
남편의 주도로 친정 식구들과 식사를 했다.
먼저 챙겨주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각이 든 건 곧 친정 엄마와 나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엄마 생신이야 당연히 챙겨드려야 하지만
올해 난 생일을 별로 요란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순간은 늘 행복하고 감사하고 소중하지만
올해는 생일이란 날을, 올해는 그냥 혼자 있어보고 싶다.
금방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한 번쯤은 철저히 고립된 보고 싶다.
멍 때리고 앉아있어 보고도 싶고, 밀린 책도 읽고 싶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쓰기를 하는 순간도 갖고 싶다.
빌게이츠처럼 정기적인 Think Week 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기에 음식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혼자 계속 걸어보거나
생각을 하염없이 해보거나
커피 한 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여러 번 씹어 먹고, 생각하고, 또 씹어 먹고 싶기도 하다.
계속 진행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위해 한 조각만 뗴어내면 어떨까.
마치 이 일만 하면 되는 양 평일 도서관 의자에서 책장을 넘기는 상상을 해본다.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가 있는 대학생처럼 노트북도 펼쳐본다.
몇 시간 후, 가족들이 사무치게 소중하게 느껴지고 보고 싶을지라도 올해 생일은
철저히 나만의 무인도에 있어보고 싶다.
잠시 멈춰야 보이는 그 어떤 것이 있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계속 뭔가를 향해 달리는 기분이 느껴진다.
고군분투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땐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
멈춰 서야만 비로소 잡힐 거라는 그 아이러니를 향해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