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꿀맛이다, 요즘 아이들말로.
짭짤하게 간이 배인 대기업의 맛.
얼마나 많은 연구원들과 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을 것인가.
높은 연봉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거나
수없이 많은 재료를 맛보아가며 열심히 만들었을 그 음식.
바로 컵밥과 컵라면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로 떠난 오전 시간 혹은 저녁 시간 일을 핑계로 밖에 나와 있을 때
손이 가요 손이 가, 컵밥과 컵라면에 손이 가요.
이제 많이 커버린 아이들에게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이미 친구 들고 편의점에서 군것질하는 맛도 알았고, 그런 재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부모로서 뭔가 바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고나 할까.
책을 읽는 모습, 글을 쓰는 모습, 영양제를 잘 챙기는 모습.
그리고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모습이 그중에 하나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가거나 캠핑을 갈 때 당연히 컵라면은 소울 푸드다.
김밥과 먹거나 라면만 간단하게 먹어도 뼛속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중간에 애매한 시간이 저녁 시간이라 살짝 고민이 되었다.
삼겹살과 목살을 사서 둘째에게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날은 갑자기 추워지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순간, 헤비(heavy)한 음식보다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MSG의 맛에 위로받고 싶은 그때, 컵라면을 떠올렸다.
라면을 사러 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발랄하다.
마트 앞엔 한 손엔 따끈한 피자를 들고, 나머지 손엔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가 보였다.
다들 두터운 패딩을 입고 가족들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장을 보고 서둘러 떠난다.
드디어 컵라면 코너에 선 나. 그때 뒤편에 여러 종류의 컵밥이 보였다.
버터장조림 비빔밥, 미역국밥, 참지 마요 덮밥 등등 컵밥의 향연 속에서 내 눈에 띈 건 '스팸김치 덮밥'.
그래, 이거야. 스팸과 김치의 조합은 나를 배신하지 않지.
살짝 매콤함이 예상되므로 그에 맞는 컵라면이 필요하다.
새우탕 라면과 튀김 가락국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개운한 맛이라는 슬로건의 '새우탕'으로 정했다.
라면물을 올리고 너튜브 창을 열었다.
전자레인지에 컵밥도 돌리고, 캐럴 음악을 검색했다.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캐럴을 듣는데, 요즘은 빈티지 재즈 스타일의 캐럴이 좋다.
클래식 무비도 생각이 나고, 겨울에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던 기억이 늘 좋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징글 벨'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물양 조절에 실패해 새우탕면은 볶음탕면이 되어 버렸지만 스팸 김치 덮밥은 김가루까지 뿌리니 감칠맛이 좋다. 다소 진한 양념면이 되어 버린 새우탕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도 올 것이다.
건강에 좋은 음식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몰래 먹는 내 영혼의 음식들이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진짜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것처럼 몰래 먹는 인스턴트의 맛.
그리고 캐럴 음악이 함께하는 이 순간이 참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