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인의 일기 두 번째 책이다.
드디어 시골에서 런던으로 입성. 사실 무리해서 도티에 셋방을 얻었다.
물론 딸 비키의 학교 진학과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오피스텔 개념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늘 공사가 다망하다.
파티와 사교 모임에 참석하고, 관능적이 외모의 소유자 친구 파멜라(스스로를 남자가 가만 놔두지 않는 여자라 생각하는)의 어이없는 부탁과 모임에 참여하느라 바쁘다.
그렇다. 그녀는 드디어 꽤 히트한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고, 통장 잔고의 부족함에 많이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모임에 참석할 때는 어울리는 옷을 찾느라 애먹고 모자 한 두 개 사려면 18번 정도는 썼다 벗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책 출간이 너무나 기쁜 나는 남일같이 느껴지지가 않느냐. 남편 로버트도 특유의 단조로운 어조로 재미있다고 하지만 책장을 여러 번 자주 넘겨보는 것이 아내의 첫 책이 꽤나 반가운 모양이다. 런던에 갑작스레 집을 얻거나 다른 일을 벌여도 그는 시큰둥해 보이지만 사실 정말 천생연분이라 느껴진다. 츤데레 남편이라고나 할까. 특히 파멜라의 어쩔 수 없는 부탁에 무명의 화가 전시회에 가서 함께 도망칠 궁리를 하는 모습은 정말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 아내에 그 남편이다 싶다.
역시나 100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1권에 이어 이 여인이자 작가의 삶은 우리와 비슷하다.
은행에 대출을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치이고, 각종 청구서를 맞이하는 삶이다. 아이들 교육에 지대한 신경을 쓰며 혼자 어울리지 않는 철 지난 드레스를 입은 것이 신경 쓰인다. 남의 가십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각 잡고 글쓰기 위해 앉은 시간에는 뜻하지 않는 방문이나 전화에 시간을 어이없게 보내기도 하다.
평범한 로버트와의 결혼 생활, 귀여운 남매 아이들이 있으면서도 하편으론 지극히 작가다운 호기심으로 격정에 사랑에 빠지는 일탈을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염려마시라,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는 그녀다.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런던에서의 급진적인 여러 만남들 속에서도, 여성의 삶을 남편과 자식으로 국한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 무조건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일상의 삶을 한탄하지 않고 여유롭게 웃어 넘기 줄도 안다.
다음 이번 책에서 많이 공감한 문장들이다.
어째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앞으로도 듣지 않을 잔소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걸까?
공허하고 소득 없는 백일몽을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이론은 틀린 게 아닐까? 중년 어른들은 부적절하고 쓸데없는 약점을 무수히 많이 갖고 있지만 이런 망상도 거기에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파멜라 프랭글이 자신의 아이들의 방을 보여주나. 아이들의 공간은 온통 흰색이고 벽에 두른 색색의 장식띠에 이르기까지 흡사 여성지에 나오는 삽화 기사 속의 공간 같다. 겉으로는 연신 감탄하지만 속으로는 우리 집의 열악한 공부방과 비교되는 광경에 풀이 죽는다.
너도 세상에 사랑 봐 중요한 건 업사고 생각할 거야. 나는 은행 계좌와 치아 건강, 적당한 하인을 구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고 그야 물론이지, 하며 최대한 지적으로 공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일랜드 병원 복권(1930년 아일랜드 병원들의 기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복권)으로 수십만 파운드를 갑자기 손에 넣게 되는 공상에 빠져 있다가 하마터면 석탄을 실은 지저분한 트럭에 치일 뻔한다.
저작권 대리인이 이제 내 펜 끝에서 새로운 걸작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조만간 원고를 기대해도 되냐고 편지를 보냈다. 이 물음에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나. 아이들과 집안일, 바느질, 편지 쓰기, 여성회 모임, 매일 밤 여덟 시간을 꼭 자야 하는 생체 리듬 때문에 문학 작품을 쓰는 건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답장한다면?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다라는 불멸의 명언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작가가 되어서 내 일처럼 기쁘다. 게다가 다음 책을 낼 가능성이 있고, 기고 요청도 받는다.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시점. 유럽의 글로벌 경제엔 파장이 일지만 주인공은 문학 작품의 성공으로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귀여운 상상력의 소유자이자 편안하고 위트 있는 그녀의 글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무심한 듯 하지만 아내를 누구보다 응원하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과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도 응원한다. 미국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3권을 통해 보고 싶은데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일기가 작품이 된 책.
나의 일기도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