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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Jun 06. 2024

소설을 읽는 이유

책 속에서 의미를 찾다

'옛날 옛날에'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알고 있는 그 설렘이 느껴져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린아이의 상상력은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고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책 읽는 소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페이드 아웃된다. 스스로 글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엔 어김없이 이야기 책을 펼치곤 했는데 그 습관은 계속 이어져 하나의 독자가 탄생하게 된다. 


Once upon a time이라 말이 들리면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펼쳐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좀 더 현실 속에 접어든 건 소설을 읽으면서이다. 

소설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 그 이야기는 아니다.

절정을 치닫다가 마지막엔 해피 엔딩으로 마음을 안심시키던 이야기가 아니다. 

신경숙, 공지영, 박완서, 양귀자로 대표되던 소설의 세계는 현실을 그려낸, 세상을 보여준 첫 번째 마중물이었다. 좀 더 환상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던 나는 현실을 드러낸 이야기가 마음이 아팠다. 

한동안 국내 소설은 읽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인 책들은 읽었지만 어느 순간 소설을 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삶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다시 소설을 읽게 된 건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시작이었다.

세대가 바뀐 만큼 이야기는 다양해졌고, 소설을 변해있었다. <브로콜리 펀치>를 읽었을 때는 MZ세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왠지 모를 어색함도 느꼈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20여 년이 사라지고 미래로 가버린 기분이었다. 소설의 적절한 온도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책들이 부엌>, <제인 인 러브> 정도가 딱 맞다. 기분 좋음 따스함, 햇빛에 바짝 마른빨래의 향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현실을 담았지만 판타지를 잊지 않은 그 정도의 작품들은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었다.


'다시 소설을 읽어도 되겠구나. 읽고 싶다.'


SF소설로 관심이 뻗어가는 지금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소설을 읽는가?

현실에 있지 않은 인물과 상황에 왜 빠져드는가?


삶은 가끔은 무기력을 선물하는데 머리로는 아니지만 마음에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곤 한다.

번아웃, 혹은 지쳐버림의 다른 이름이다. 

<다시, 문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문화라 작가는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공감 능력을 쌓아 인간과 세상을 배우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백신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문학을,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결국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학을 읽어야 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편리를 누리고 AI의 급발전에 미래 사회가 금방이라도 온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이 시작이고 끝이기에, 사람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모두이기에 

소설은 그 역할을 계속한다. 






상상할 수 없는 미래로, 궁금했던 과거로, 그리웠던 그때로 소설은 우리를 데려간다.

내 삶의 빈틈과 타인과의 간극을 채우는 것.

그것이 소설의 힘.

문학의 존재 이유다.

오늘도 한 장 한 장 소설을 읽는다.

내 상상의 세계를 한참 넘어서버린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소설 속엔 작가의 인생이 있고, 그 시대가 있고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이제 소설을 외면하지 않겠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하지 않고, 양팔 저울의 수평을 맞추듯 함께 하고 싶다. 

기쁜 일만 알고 싶은 사람이지만 슬픈 모습도 기꺼이 보려 한다. 

지극히 문학적인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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