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억력은 안 좋아도 거짓말은 안 해."
그렇다.
이 문장을 본다면 누구나 아, 이 사람의 글은 거짓말에 대한 무언가가 펼쳐지겠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이 글은 기억에 관한 글이다.
지인들의 전화번호 정도야 한 번에 외우고 절대 잊지 않던 기억력의 소유자.
한문 학원 가장 먼저 사자소학과 추구집 암기를 끝내고 유유히 문을 나섰던 소녀.
그게 바로 나야 나, 나야 나.
지금은 사라진 그이가 바로 이 몸이다.
빛나던 기억력이 영원할 줄 알고 논어까지 수업을 듣지 않았던 것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다.
언제부터였던가?
기억력이 점점 감퇴했던 것은.
가장 큰 전환점은 출산일 것이다.
아이를 품은 여체는 모든 영양분과 사랑을 태아에게 주는데 여기서 사랑이란 본능적 임의 발현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 아이를 품에 안기까지 아기를 사랑하는 줄 몰랐다, 혹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자동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이 맞다. 내가 하는 말은 기억력에 한해서이다.
두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 이후 급격히 하강하는 체력과 희미해지는 기억력, 거기에 더해 문명의 이기로 사용한 스마트폰이 나의 기억력을 감퇴시킨 주 요소이다.
덕분에 필사를 하면서 한 문장이라도 외워서 써보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기억력 상승을 희망하면서.
감퇴한 기억력 덕분인지 과거에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쩌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가 정답일 것이다.
노트북 화면을 닫고 불현듯 누군가가 떠오를지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은 그저 미래의 내가 가장 궁금하다.
원하는 모습으로 잘 살고 있을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다 보고 싶다.
미래인이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시간과 공간은 소유할 수 없지만 그 안에 우리는 참여할 수 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 지금은 내 모습이다.
미래의 모습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난 미래를 기대하는 아이였고, 나도 모르게 내일의 삶이 더 좋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믿어왔던 터였다. 더 나쁜 일이 찾아와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저 하루하루 살다 보니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열 맞춰서 왔었다. 보고 싶다, 내일의 나. 일 년 후의 나. 십 년 후의 내가.
딱 기다려! 보러 갈게!
고마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