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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스승

by 마음돌봄
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스승의 뜻을 찾고 싶었다.

나를 인도하는 사람이라니, 멋진데.

이런 의미라며 굳이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에 국한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다양성이 펼쳐질 테니까.

돌아보면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 뵈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초등학교(사실 국민학교랍니다, 우훗) 5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이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예쁜 분이셨는데 학기 중에 결혼을 하셔서 절로 결혼식을 보러 간 기억이 난다. 나름 반장이었던 덕분이다. 늘 친절하고 아름답고 온화했던 분.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계시려나 궁금하다. 사실 5학년때였는지 6학년때였는지 혼란하다 혼란해.






다음으로 기억나는 분은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남자분이셨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열심히 수업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영어보다 국어를 더 좋아해서 있는 문제집 없는 문제집 다 구해다가 국어 공부를 하곤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꿈틀 중학 국어 문법> 정도 되는 책이려나. 심오한 언어의 세계에 빠져서 열심히 문제집을 풀어댔었는데 영어는 아직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문법이 너무 어려웠던 탓에 약간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1994년 혹은 1995년이던가, 서지원이라는 꽃미남 가수의 죽음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술렁이던 그때, 난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박선주 작사가의 유려한 가사와 가수의 청아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슬픈 노래였다. 너무나 감각적인 그의 노래와 가사는 당시 여러 소녀들의 마음을 두드려댔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거의 이발 수준이었지만) 등교하던 날의 영어 시간, 선생님은 내 머리를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하셨고 요즘 인기 가수의 죽음으로 세상이 좀 시끄러운데 걱정이 된다며 말씀하셨다. 난 전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시간을 껑충 뛰어넘어 고등학교로 가보면 그때가 학창 시절의 최고봉이었다 싶다.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도 있었고, 젊은 이십 대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이곳으로 첫 부임을 한 영어 선생님은 신촌의 대학가와 대학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우리를 인서울을 꿈꾸게 했고, 난 정말 꿈만 꾸고 말았다. 그래도 독특한 그 영어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에너지를 많이 받곤 했다. 지리 선생님도 젊은 선생님이었다. 압해도가 고향이라던 선생님은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잘 계시겠지? 역시 난 젊은 분들이 맞나 보다.






시계를 두 바퀴 돌려 영어 공부방을 오픈하기 전 나름 원서 공부를 한다면서 여러 강의를 들으러 다녔고 당시 나에게 획기적인 강의 방식을 알려준 분이 있었는데 바로 정정혜 선생님이다. 영어 쪽에 종사하시는 분이라면 혹은 엄마들이라면 이 분이 많이 익숙할 것이다. 줌강의를 정정혜 선생님 강의로 입문했는데 동시에 500명이 넘게 접속한 것을 보고 아고 이 돈이 얼마야부터 외쳤던 속물이었던 난 새로운 방식에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이후로 챕터북 수업이나 기타 그림책 강의를 들었고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은 애프터가 확실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자료가 업그레이드되면 꼭 공유를 해주시고 늘 노력하시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정신 차려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 기억나는 분들을 몇 분 떠올려봤다.

추억이 생각나고 좋기도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너 없는 직장 동료도, 예의 바른 꼬마 아이도, 자기 일에 열심히인 커피집 파트타임 직원분도,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다 스승이 될 수 있다. 저런 행동은 안 해야지, 혹은 저렇게 사는 게 정말 멋지구나 등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명언 속에서도 영상 속에서도 책 속에서도 스승은 만날 수 있다. 정말 배움의 축복이 끝이 없다, 일의 축복이 끝이 없는 것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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