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 1940년 맥도널드 형제가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첫 매장을 문을 열었고, 우리나라에는 1988년 첫 영업을 시작했다.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 있다.
대학 시절 나의 아지트는 패스트푸드 가게였다.
정확히 말하면 동아리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맥도널드 OO점.
성실하게 일하던 친구는 크루에서 시작해 점장까지 차곡차곡 올라갔는데 어쩌면 그 성실함이 내 눈엔 더 대단해 보여 자꾸 갔는지도 모른다. 사실 학교 내에 롯데리아가 있었고 단짝 친구 정화와 난 공강 시간이면 롯데리아 데리버거를 시켜놓고 콜라를 수십 번을 리필해 마셨다. 그랬다. 당시엔 콜라 무한 리필이 가능했다. 탄산음료는 먹지 않는 게 좋다지만 20대의 젊은 위장은 탄산음료 따위와 거뜬히 몇 잔을 마실 줄 아는 정말 위대한 위였다. 롯데리아 데리버거 세트가 물리면 어김없이 동아리 친구가 일하는 맥도널드로 향했다. 롯데리아와는 다른 햄버거의 맛, 무엇보다 우리의 입맛을 충족시켰던 것은 애플파이와 그에 곁들여 먹는 아메리카노였다. 달짝지근하고 바삭한 애플파이와 아메리카노의 조합은 꽤나 담백하고 좋았다. 하루에 한 끼를 데리버거로 먹고 애플파이와 커피로 후식을 즐기는 우리들은 친구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수다 삼매경을 펼쳤다. 빨간 모자를 쓰고 연신 주문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친구는 꽤나 멋져 보였다. 난 과연 저렇게 붉게 타오르며 열심히 일한 적이 있던가. 어영부영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와서 나름 대학생이라며 일상을 즐기던 난 때늦은 사춘기로 인생을 방황 중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영여 교육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한 후론 뭔가 마음속에서 열정이 타올랐는지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온갖 공모전과 체험에 열의를 보였다. 역시나 바쁜 대학생에겐 햄버거 세트는 영혼의 음식이다. 방황하던 때나 바쁠 때나 햄버거 입에 물고 콜라를 연신 마셔대는 건 비슷했다. 마침 시내에 버거킹이 생기고 친구들과의 아지트는 그곳으로 바뀌었다. 고전 영화배우들의 사진으로 인테리어를 한 버거킹은 딱 내 취향이었다.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실컷 보며 숯불 향이 나는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그곳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학교 안 롯데리아나 친구가 일하는 맥도널드가 아닌 새로운 장소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도 한 여름엔 맥도널드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잊을 수 없었기에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를 우적이고 나면 늘 맥도널드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곤 했다.
어느 순간 햄버거가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산미가 있는 것을 찾고, 고기를 먹어도 너무 가격이 싼 것은 먹지 않는다.
뭐 대단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그 위대한 위가 더 이상 스무 살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 두 잔 이상을 마시면 속이 영 편치 않고, 빵 한 조각을 먹어도 재료가 좋은 걸 먹어야 하루가 무탈한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여전히 이동 중에 바쁘면 정말 감사하게도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로 향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적은 양이어도 밥을 먹어야 편안한 나의 위는 이렇게 외친다.
'왜 김밥 드라이브 스루는 없는 거야?'
롯데리아로 시작된 나의 패스트푸드 인생은 맥도널드와 버거킹을 거쳐 이제는 서브웨이나 프랭크 버거 같은 곳을 찾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채소, 과일, 고기가 있는데 완전식품이라 불리지 못하고 정크 푸드라 불리는 햄버거일지라도 가끔씩 그 짜릿한 맛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 모든 햄버거에 다 패티처럼 두텁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갔던 그곳들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나에게 햄버거는 정크 푸드가 아닌 소울 푸드다. 패스트푸드라고 치부하기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그런 음식이다. 슬로 슬로 킥킥, 내일 저녁으론 내 사랑 햄버거를 야금야금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