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이자 막내

엄마니까 최선을 다한 것이다

by 마음돌봄
어머니, 우리 OO이가 오늘 처음 말을 했어요. 그런데 '엄마, 언제 와?'라고요.





둘째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

두 살 터울 형을 따라 어린이집에 일찍 간 둘째에게 늘 미안했던 나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결정타가 되어 돌아왔다.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 또한 엄마인 내가 자초한 것이었기에

혹시나 엄마의 이기심으로 인해 둘째가 어린이 집에 너무 빨리 간 건 아니었는지

그래서 조금 더 예민한 성격이 된 건 아니었는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었다.

물론 다시 경제력을 갖고 싶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꼭 그렇게 일을 시작해야 됐었나도 싶고

한 편으로 직장맘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데 앓는 소리냐 싶기도 했다.


큰 아이는 3년 가득 채워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는데

둘째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좀 더 내 품에 끼고 부대끼고 뒹구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러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장도 약했고 아토피도 조금 있어서 더 신경 써줘야 하는 아이였다.

늘 보살처럼 잘 웃고, 위의 형이 살짝궁 밀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앉아있었다.

큰 애처럼 책도 더 읽어주고 눈도 맞추고 교감을 해줄 수 있었던 오전 시간에 일을 시작했다.


가장 막내반 아기로써 범보 의자에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

플래시 카드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

블록을 맞추며 노는 모습.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며 행복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일하고 있나 싶고 주말이면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생각하곤 했다.

너무 이른 복귀를 선택한건 아닌지 고민이 됐다.




엄마와의 시간이 양보다 질이고, 엄마 냄새 3시간만 꽉꽉 채우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엄마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빨리 파악하는 건 아니다.

어떤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란 사람이 원한 건

어린이 집에 가장 마지막으로 데리러 가는 엄마가 아닌

어린이 집 1차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이들을 제시간에 맞이하는 기쁨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시기.

이유식을 몇 개씩 만들어 아침에 동동거릴 필요도 없고

큰 아이에게 신발을 빨리 신으라고 재촉할 필요도 없다.

밤에 피곤해서 쌓아놓은 설거지를 아침에 허둥지둥할 필요도 없다.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반가워하며 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삶의 질은 향상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현실이란 벽은 남아있지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좀 더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는 건

엄마로서 누리는 기쁨 중에 하나다.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하며 양쪽 팔 길이가 맞지 않는다며 옷을 바꿔 입는다는 아이(하나의 옷이 어떻게 양쪽 길이가 다를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티셔츠가 등에 닿으면 까슬까슬하다며 까탈스러움을 보이는 아이에게 그래도 너그러울 수 있었던 건

이제는 가질 수 있었던 아침 시간의 여유 덕분이었다.







사람의 간사함으로 인해 내년에 중학교에 갈 아이를 보며

아쉬운 부분이 보일 때면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생각한다.

내가 더 안아주고 싶었던 그 아이.

그리고 지금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 내고 있는 그 아이.

곁에 있어서 감사한 그 아이.

엄마를 따라 졸린 일찍 일어나겠다고 알람을 세 번 맞춰놓는 아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담요와 책을 챙기고 거실로 나오는 아이.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며 입에 넣어주는 아이.


세상의 엄마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직업이 좀 더 세상이 인정한 안정적인 직업이었다면 죄책감이 덜했을까 생각도 해봤다.

아니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건 힘듬은 있는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부채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랑의 크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채지 않는 마음으로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엄마 스스로가.


무조건 돌봐주기만 하던 시기를 지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기가 되어보니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했음을 깨닫는다.

다행이다.

아직 그 시간들이 남아있어서.



아기시절 함께 많이 못했던 아쉬움과 자기 책망은 이제 그만하고

앞으로의 시간 더 많은 대화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더불어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가야겠다.

본인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선택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번져나가니까.

나의 선택으로 주변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사람의 선택에 있다. by 조지 앨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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