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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Jul 01. 2023

국가자격증 있는 여자

언니, 손힘이 있어. 피부관리사 해도 되겠어요.


뭔 소리야?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함께 육아를 하다시피 한 시누와

서로 어깨를 주무르며 곰 한 마리를 몰아내던 순간이었다.

인생에서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

육아업계 종사 후 관심 끄고 살던 필드인데.


결혼 전 꽤나 멋쟁이 소리를 듣고 살았다.

특히나 20대엔 외모에 신경 쓰는 나이니까.

사각턱과 고고하게 치솟은 광대는 평생 친구로 삼더래도

스타일이나 몸매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었으므로.


출산 후 아이들에게 오로지 집중을 함으로써 외모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살았었고

잠깐 직장을 다닐 때도 그냥 깔끔하고 번듯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입술만 바르며 동동거리며 지냈다.


점점 전업주부의 삶에 적응되던 어느 날 시누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한 번 해볼까?

전공과 다르면 뭐 어때?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이왕지사 오전 시간 비었으니 한 번 해보자. 

나의 다른 뇌를 써주겠어.


호기롭게 시작한 '피부관리사 국가자격증'

국비지원으로 시작했기에 고용지원센터에서 왜 이 일을 배우려고 하는지 담당자와 몇 차례 면담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상담했던 직업상담사 일도 뭔가 좋아 보여서 흘깃거리기도 했지만

나랏돈으로 열심히 배워보겠다며 상담도 열심히 했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내고 나가게 된 미용학원은 또 다른 세계였다.

늘 영어책과 씨름하고 도서관만 다녔었는데 이곳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나이대는 어디 보자. 20대 초, 중, 후반이 골고루 있었고 36살 언니도 한 명 있었다.

이야. 새로운 공기가 느껴졌다.

보통 미용은 피부미용, 헤어, 네일, 메이크업 네 가지 부분에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배운다.

그중에서 헤어의 영역은 기본 6개월 걸리는 과정으로 딱 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필기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초등 전과만큼이나 두꺼운 교재로 시험 준비를 했다.

간만의 시험이라 한 번에 통과해야 한다는 마음에 승부욕이 발동했다.

늘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놀아주던 엄마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니 큰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 가도 와서 흘끔거린다.


"아들, 엄마 한 번에 패스할 거거든. 동생하고 잘 놀아주고 있어. 파이팅!"


필기시험을 두 번 보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열심히 용어들을 외우고 문제를 풀어본다.

피부미용학, 피부학 및 해부생리학, 피부미용 기기학, 화장품학, 공중위생관리학      

과목은 5과목.

새로운 용어들의 향연에 낯설지만 나름 재미도 있다.

결과는 단번에 합격.

그리고 남은 건 실기 준비.

또래는 아니지만 학원 동료들과 나름 재미있게 준비한다.

20대들은 오랜만이라 그들의 세계를 느껴보니 젊은 아줌마는 참 즐거웠다.


선생님의 설명을 놓칠세라 동작을 따라 하고 연습해 본다. 

저녁엔 남편을 눕혀놓고 실습, 주말엔 양쪽 어머니들, 동생에 시누까지 난리를 하며 연습을 해본다.

실기 시험은 본인이 모델을 구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보통 함께 공부한 동기들끼리 서로 모델을 해준다.

모델비도 아끼고 일석이조. 

제모 시험까지 있기 때문에 피부미용실기 모델들에게 다리털 준비는 필수다.


실기시험장엔 피부미용학과 교수님들이 주로 심사를 보시는데

피부미용학과 대학생들은 웨건에 예쁜 꽃이며 하얀 레이스까지 그야말로 뷰티풀이다.

60점 턱걸이이긴 했지만 결과는 단번에 합격.

학원 선생님은 사실 합격할 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신다.

쓰앵님. 제가 이래 봬도 시험엔 승부사랍니다.


내친김에 경락까지 2차 학원에서 배워본다. 이때 가장 행복했던 부분은 바로

같은 반 동기들끼리 서로의 몸으로 실습을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페이스관리에 몸관리까지 한다는 사실. 우훗.

서로의 몸을 만지다 보니(?) 더 친해지기도 하고 아침마다 함께 먹는 모닝커피 시간도 꽤 재밌었다.

과정이 끝나가면서 피부관리사로 취직한 언니도 있고

시댁 사업으로 하는 모유수유코칭상담사일에 전문성을 더한 동생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몸은 어땠느냐?

과감하게 샵을 오픈해서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사실 친정어머니가 하시던 일이라 살짝 얹혀 있는 중이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번아웃이 왔던 때라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12시간씩 특강을 하고 강의를 했던 시절엔 하루만 아무 말도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부관리사 일을 하면서 내 할 일만 집중하면 되었다

쉬러 오는 고객들과 가끔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다른 인생의 단면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몇 년 만에 엄마와 티키타카 붙어있는 것도 의미 있었다.

이 분야로 대학원을 가볼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고

시데스코(CIDESCO) 자격증을 취득하여 

해외 취업을 해 에스테티션으로 살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가정이 있는지라 이 역시 녹록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하던 일로 돌아와 있지만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분야의 도전은 꽤 신선했고

어쩌면 사람은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은 모르는 재능을 남이 알아봐 줄 수도 있고

스스로가 과감히 해봐서 알아내기도 하고.

나이도 두 살 어려져 더 길어진 인생에서

하나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만의 '원씽'을 찾아 전력질주하여 끝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

생각지 않았던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다 중요하다.


한 직장에서 15년, 20년 근무하는 것도 위대하고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도 위대하다.

전업주부의 바쁜 일상도 위대하고

워킹맘의 분단위 삶도 위대하다.

고로 모든 삶은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누가 알겠는가?

인생의 후반전에서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지금은 도전해야 하는 때다.



피부관리사(에스테티션)란?

전문적으로 피부를 관리해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고객의 얼굴  전신을 대상으로 질병이 아닌 피부의 상태를 관찰하여 분석하고천연 재료나 화장품기기기구 등을 사용하여 분석 결과에 적합한 피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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