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원 제목도 모르고 빵을 훔쳐 불쌍하게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야기라고만 알고 있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장'이 성씨 인가 하는 무식한 생각도 했었다.
여러 버전의 '장발장' 책이 있지만 아직 완역본을 읽기 힘든 아이들에겐 삼성출판사의 '장발장'을 추천해 본다.
중요한 내용이 빠짐없이 나와있으며 책 뒷부분에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이야기 그리고 질문까지 있어서
거창한 수업이 아니어도 이야기 나누기 좋다.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로 다시 만났는데 책을 읽는 내내 역할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맴돌았다.
휴 잭맨의 장발장
앤 해서웨이의 판틴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코제트
러셀 크로우의 자베르
에디 레드메인의 마리우스까지.
덕분에 훨씬 더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고, 영화 ost까지 배경으로 하고 읽으니 느낌이 배는 살아났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일단 프랑스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가 그 중심에 있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갈등 속에서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가 손자와 아버지를 못 만나게 해서 마리우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를 같이 가지고 있는데 이는 빅토르 위고와 위고의 부모님 사이와 비슷하다.
위고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밑에서 장군을 지냈고, 어머니는 왕정을 주장하는 왕당파 집안 출신이라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처럼 그가 살던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정치적 금변기의 시기였고 마리우스처럼 위고도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편에 서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이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비판하다 망명 생활을 했는데 그때 쓴 작품이 바로 '레 미제라블'이다.
작품의 이름에서 이 작품의 모든 인물과 주제가 다 들어있다.
'레 미제라블' = '레'는 복수형을 의미하고 '미제라블'은 비극적인, 슬픈. 하여 제목은 '비극적인 사람들'이다.
과연 위고가 말한 '비극적인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누구일까?
첫 번째는 장발장이다.
미리엘 주교의 선행으로 새 사람으로 태어난 장발장은 지나치리만큼 남을 돕고 진실 되게 살려고 하며 자신에겐 엄격하게 대한다.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포르슈방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장발장으로 오해받은 샹 마티유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도록 끝까지 법정에 도착해 진실을 밝힌다. 마들렌 시장으로서 받는 존경과 신망을 내려두고서. 게다가 다시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팡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제트를 데리러 가려하고, 헌신적으로 잘 키워내며 후에 사위가 된 마리우스에게도 목숨을 구해준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자신을 잡으려 한 자베르 형사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끝까지 자신에겐 편안함과 풍족함을 허락하지 않은 채 남은 재산조차 자신을 위해 쓰지도 않는다.
두 번째는 자베르이다.
당시 귀족이나 왕족은 편의대로 살고 있으며 가난한 시민들은 굶주리고 힘들게 살아간다. 조그마한 잘못만 있어도 지나치고 가혹한 벌을 받기도 한다. 자베르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한 그 시대의 경찰이며 자기 직책을 늘 성실하게 수행한 사람이다. 또 테나르디에가 종드레트로 이름을 바꾸고 사기를 칠 때도, 그의 속임수를 훤히 꿰뚫은 유능한 형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화당파 혁명군의 본거지에 집입해 자기 직무를 용감히 수행하기도 했다. 경찰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도 목숨을 구걸하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의 프랑스 자체가 정의롭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자베르는 사회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다. 결국 장발장이 자신을 살려주었을 때 경찰로서의 의무감과 인간적인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죽음을 선택하여 자살했다. 경찰로서는 장발장을 잡아야 하지만 자신을 살려주고 선한 장발장을 체포하는 것이 인간적인 양심으로는 도저히 허락이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자베르도 시대의 희생양이다.
세 번째는 코제트이다.
코제트는 장발장이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보살핀 가족이다. 장발장은 팡틴느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도 느꼈겠지만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고 사냥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는데 이미 출소했을 땐 누나나 조카들이 죽었을 수도 있고 각자 어른이 되어 뿔뿔이 흩어 살았을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가족이 없는 장발장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을 코제트이다. 하지만 어릴 적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학대를 받았으며 엄마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였다.
다음으로 사랑하는 딸을 보지 못하고 일만 하고 돈만 뜯기다 죽은 팡틴느, 정치적 격변기를 겪은 마리우스, 손자 마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편협한 판단을 해서 사위와 손자가 만나지 못하게 했지만 결국 마리우스를 너무나 사랑했던 외할아버지, 인간답지 못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테나르디에 부부, 그런 부부의 딸이자 마리우스를 짝사랑하지만 결국 사회의 혼란 속에 죽은 에포닌과 모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 '레 미제라블'이다.
과연 빅토르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살던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를 만나 새 사람이 된다.
이후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살아가며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산다. 그 사랑의 실천과 용서가 결국 독자들에게도 전달된다. 이 책에서 미리엘 신부님의 말에서 모든 주제가 드러난다.
왜 자신이 은그릇을 훔쳤는데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바라보는 장발장에게 신부님은 말한다.
그만 갈 길을 가십시오. 부디 착하고 바르게 살면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겠소.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소.
미리엘 신부님의 편견 없는 사랑이 장발장에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시선 한 번 준 적 있었을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자식도 함께 있을 때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은 살면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받는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타인에게도 이런 사랑을 베풀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다.
마음껏 사랑해 주고 마음껏 사랑을 받자.
참고로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드 파리>, <웃는 남자>의 작가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 만세. 빅토르 위고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