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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Jan 26. 2021

[02일 미션] 나는 누구?

[당신은 누구인가요] 20일간 글쓰기 모임

[미션: 여러분이 누구인지 소개해주세요]
대번에 ‘김 빠진 사이다’가 떠올랐다. 나를 말하라, 김 빠진 사이다에 대해 쓰려던 참이었다. (미션을 확인하길 잘했지, 어디서 네 맘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여...)

[미션 재 확인: 여러분이 좋아하는 물건 한 가지를 떠올려 그 물건에 대해 세 줄 이하로 씁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

내가 좋아하는 물건..

내가 좋아하는 물건...




좋아하는 곳,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참 많이도 외쳐왔구나 싶었다. 산, 중고 서점, 바로 딱! 한국을 떠나오고, 한국이 그리운 것은 딱 저 두 가지였다. (그리고 추가로 돼지국밥 정도?) 떠나보니 알게 된 것이고, 오래 떠나보니 ‘확실히’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런 것도 똑 부러지게 잘 안다고 말했던 친구. 똑 부러지면 뭐하냐, 좋아함이 확실해진 만큼 자주 보지 못하는 괴로움도 확실해진 것을. 오랜 ‘그리움’은 ‘괴로움’으로 이어졌다. 초성하나 안 바꾸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뭐지? 내가 좋아하는 물건.. 내가 좋아하는 물건... 도저히 좋아하는 물건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남편에게 묻는다.
“너는 공구를 좋아하잖아. 난 뭘 좋아해?”
“너? 애들 웃기는 거.”
“아니, 물건.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어?”
“.....”

이런 난관이 있나. 좋아하는 것 하나 생각해 내질 못하나? 양말? 마사지 기계? 책을 좋아하나? 신발을 좋아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물건이 생각나질 않는다......
아.
아아.
아아아.
아아랐다..!
좋아하는 물건을 당연히 생각해 낼 수가 없지 나는. 왜? 나는 물건을 좋아하는 것을 경계하니까!


나란 사람. 물건에 정이 깃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물건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물건 수명이 다 할까 걱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그게 나다. 너무 좋은 물건을 못 만나는 것도, 너무 좋은 물건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 애착의 정도를 항상 체크하는 사람.

“언제든 쉬이 떠날 수 있는 게 좋은데. 몸 하나에 걸칠 수 있는 것들만 기억하며 살고 싶어.”

늘 남편에게 하는 말이었다.



집을 고치는 것이 취미인 남편. 이사 온 이 집을 너무 열심히 고치길래 은근 걱정했었다. 이 집을 떠나게 될 때도 올 건데, 어쩌려고 저렇게 제대로 고쳐대는 것인지.
“나중에 한국에서 집 지을 때, 어떻게 하면 될지 알겠어.” 남편 왈.
“이 집을 떠난다고? 떠날 수 있겠어? 이렇게 애정을 쏟아 고쳐놓고?” 나 대꾸.
“재밌었잖아. 더 재밌을 수 있겠고.” 남편 화답.

세상에... 그대의 시간과 육체적 에너지에 의미를 부여한 건, 자네가 아닌 나였구만?!!!

애정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의 친구가 쏟은 그 시간들의 땀과 힘줄에 내가 애절했던 것이다. 자기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고친 이 집의 모든 구석들, 그것에 엮인 건 그가 아닌 ‘나’의 애정이었다.

“적당히 고쳐. 그러다간 이 집 못 떠난다.”
애정이 깃드는 것이 두려워 언제나 가락을 보탠 것도 나였다. 다 나였다. 어딘가에 추억이 깃들까 봐, 애정이 깃들까 봐, 그래서 못 떠날까 봐, 늘 그리워할까 봐, 두려워한 건 나였다. 언제나 나였다.



딱히 좋아하는 물건 하나를 꼽기가 이렇게 어려운 나였나? 나 너무 이상한 사람인가? 했는데. 결론적으로 마음에 든다. 적당히 두루두루, 없어져도 좋을 만큼 주변의 것들을 적당히 좋아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 확인되었으니. 마음에 든다. (아니 안심이 되는 거겠지.)

나는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알아서 탈인 것은 바로 이런 때일지도 모른다). 나의 두려움에 대한 또 한 번의 확인이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하긴 하지만, 이미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알아서 다행인 것은 바로 이런 때일 것이고). 아리다고 어찌하긴 어려운 지난 내 삶의 흔적이니.



한참 생각한 후, 질문에 맞는 답 같은 답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 그리고 그 물건에 대한 설명 3가지:


대책 없는 ‘나’란 물건.


1. 한 때 톡 쏘는 사이다였던 적이 있다.
2. 김 다 빠졌다.
3. 우유가 되려고 애쓰는 중인데, 그 마저도 아직은 물탄 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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