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이(小耳)증을 갖고 태어나 접힌 왼쪽 귀와 20년간 함께 했다. 작은 귀는 내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부모님께 하는 불평불만을 허용해 주는 방패이기도 했고, 사춘기 시절 자존감이 바닥으로 치닫던 원인이기도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귀를 가지고 살면서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라는 생각 속에 나를 가두고 절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거울 앞이었고 중학생 때 절정이었으며 고등학생 때는 나를 분노 속에 가두어 놓았다.
내 외모에 대한 실망과 열등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을뿐더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얕은 마음의 깊이였다.
이는 다른 것으로 표출되었는데 방황을 하며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았고 마음속 웅덩이를 파 나를 홀로 가두어놓았다. 웅덩이 속에서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완전히 인정하고 온전히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19년 여름부터였다.
18년 여름에 1차 수술을 했다. 1년 뒤에 2차 수술까지 해야 하는 규모가 꽤 큰 수술이었다. 갈비뼈 아래쪽 연골을 빌려 왼쪽 귀의 형태를 만들었다. 7살 때 실패한 수술의 후유증으로 귀 뒷부분 살이 연약했지만, 고맙게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갈비뼈 연골을 잘라내는 수술은 내 몸에 큰 흉터를 남겼다. 20년간 흉터 하나 없이 잘 커왔는데 예뻐지고자 하는 이 수술이 정말 미웠다. 미라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싸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매일 아침 소독 시간이었다. 낯선 연골을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귀와 잘 움직이고 있는 뼈를 맘대로 빼앗아간 것이 억울했는지 마구 통증을 내뿜는 갈비뼈가 적나라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뼈를 건든다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 된다.
마음은 참 웃기다. 늘 양면적이다. 별다른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 어머니 아버지께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이 아픔을 내가 왜 겪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나를 참 슬프게 했다. 10대의 내가 지닌 생각의 꼬리물기가 물꼬를 텄는지 생각의 무한대로 향했다. 잠을 잘 못 잤다. 다행스럽게도 1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9년 여름에도 수술로 인한 고통은 이어졌지만, 2차 수술은 내 귀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는 시기였다. 2차 수술은 1차 때 연골로 귀 모양을 만든 것을 바탕으로 피부이식을 통해 귓바퀴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피부이식이기 때문에 1차 수술보다 4분의 1도 아프지 않았다. 그만큼 통증이 덜 했다. 하지만 내 귀는 또 한 번의 여름을 나기에 많이 지쳐 있었다.
왼쪽 귀는 땀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새 피부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곪아버린 탓에 2차 피부이식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7월 말에 시작한 수술이 8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고자 했던 내 목표와 다음 학기 더 재밌는 수업을 듣고자 했던 기대감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휴학이라는 키워드는 내 머릿속에 없었는데 말이다.
이 생각과 함께 또다시 무기력의 굴레로 빠져들어 갔는데, 그 이유는 수술한 왼쪽 귀가 오른쪽 귀와 닮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릴 때 소원은 남들처럼 머리 길러서 귀 뒤로 넘겨도 보고 싶고 귀걸이도 해보고 싶고 머리를 묶어보는 것이었다. 2차 수술을 하면 내가 염원했던 것들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붕대를 풀기 전날이 기억난다. 설레서 잠을 못 이루던 날. 오른쪽 귀와 다른 모양의 왼쪽 귀를 마주하고 서러움에 가득 찼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기다렸던 걸까. 행복해지려고 한 수술이었지만 더 큰 욕심 속에서 나를 또 가두고 있었다.
욕심의 굴레를 깨트리기까지 오래 걸렸다. 가족 덕분이었다. 두 번의 여름을 함께 병원에서 간호해 준 언니들과 매일 안부를 물어주는 부모님, 그리고 병문안 와주는 이모, 사촌 등등 모두 가족 덕분이었다. 예뻐지고 싶고 남들과 같아지고 싶던 내 개인적인 욕심을 채워주고 힘든 여정을 함께 해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너무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똑같이 생기지 않은 귀를 갖고 있는 것도 ‘나’고 얼굴 비대칭을 미워하는 나도 나며, 가족에게 사랑받는 나도 나였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였다. 그리곤 알았다.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마음은 곪아 터지고, 이 순간이 얼마나 고맙고 평화로운 순간인지 깨달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기 마련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끗 차이다.
두 번의 여름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나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내 삶을 채우는 중이다. 그렇게 나의 여름 이야기는 끝나고 사계절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간의 내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