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귀로 살아간다는 건
[ congenital malformation of external ear ]
: 귀의 발생 과정에 이상으로 인해 외이와 중이에 생긴 선천성 기형
소이증은 말 그대로 작은 귀다. 양쪽 귀에 생기기보다 한쪽 귀에 생기는 케이스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7000~8000명 중 1명꼴로 생기며 유전적 성향이나 염색체 이상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소이증은 외이와 중이의 형성이 잘 이루어져있지 않고 외이도가 막혀 있어 난청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쪽 귀의 청력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학습에는 큰 지장이 없다.
7살에 첫 수술이었다. 부모님은 돈 벌기 바쁜 상황 속, 나를 데리고 제법 큰 성형외과를 찾았다. 소이증 환자를 처음 본 그 성형외과 의사는 어찌 수술을 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찌어찌 한 번 귀를 펴보겠다는 그의 자신감 없는 말은 당연한 결과를 낳았다. 수술이 실패했다. 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 수술할 때 큰 리스크를 안겨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병원은 망했더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놀림을 피하기 위해 시도한 수술이 실패하자 큰 방도가 없었다. 성형외과에서는 일부 돈까지 돌려준 마당에 서울로 또 수술을 하러 가기에는, 세 딸을 키우는데 여념 없던 부모님의 의사결정 속 논외였다. 그래도 당당히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막내딸의 웃음이 안도감을 줬는지 우리 가족은 큰 걱정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바빴다. 그 정도의 난청은 뭐, 장애도 아니니까.
사춘기라 불리던 그 시절에는 난청이 있는지 몰랐다. 아마 중학교 때 대학병원에 가서 왼쪽 귀의 청력이 오른쪽 귀에 비해 잘 안 들리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른쪽 귀가 더 발달하여 청력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왼쪽 귀까지 잘 들렸으면 세상 살기 괴로웠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소음에 예민한 편인데 이보다 더 잘 들린다구? 아유 시끄러운 우리네 세상. 오히려 안 들리는 게 마음 편했다.
난청임에도 장애는 아니고, 비장애는 또 아닌데. 참 애매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꼭 장애와 비장애를 선택하는 느낌이었달까. 내게 선택권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전히 오른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있다. 왼쪽 귀에서 들리는 소리는 미세하다. 삶에 큰 불편이 없으면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라고 가족들에게 선포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똑같은 마음이다. 더 시끄럽고 싶지 않다. 어린 날의 내 마음속이 충분히 시끄러웠다.
성인이 되고 소이증 수술을 진행할 때, 전국의 소이증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의 목소리로 인해 보험을 적용하며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마 나 어릴 적 수술할 때는 보험 적용이 안된 시절이었을 거다. 엄마는 자기가 바쁘고 신경 쓰지 못한 지난날을 미안해하며 그 부모님들에게 고마워했다. 덕분에 혜택을 입었다.
소이증, 장애와 비장애 그 중간에 위치한 무엇. 그 작은 귀가 뭐라고 내 마음속을 후벼 팠겠냐마는, 어릴 적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이었다. 하나를 잃고 10을 얻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쪽 귀를 내어주고 내 마음의 크나 큰 깊은 동굴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그 동굴은 나 스스로를 보듬는 안식처이자 숨는 곳이다. 새로운 마음의 그릇을 얻은 요즘은, 내 동굴에서 커피 한 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