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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가드너 Jan 21. 2024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밖에서는 파워당당, 집에서는 눈물샤워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와 같지 않다.

우린 늘 달랐다. 나는 나고 너는 너였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어릴 때는 쉬웠고 20대 초반까지 어려웠고 지금은 받아들였다.



청소년 시기에 거울을 즐겨보지 않았다. 얼굴에 집중하면 슬픔이 마구 차올랐다. 덩달아 남들의 시선에 잘 집중했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에는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다고 여겼다. 인지발달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청소년기 자기중심적 사고를 온전히 경험했달까. 혹여나 나의 귀를 쳐다볼까 머리를 늘 단발로 하고 다녔다. 


어느 날 용기 내 머리를 묶고 (사실 머리를 감지 않은 이슈 때문이었다) 언니와 함께 슈퍼에 갔다. 계산대 앞에 서는데 갑자기 두려웠다. 언니에게 계산하라며 언니 뒤로 숨었다. 슈퍼를 나오며 이유를 묻는 언니에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사람들이 내 귀 볼 것 같아.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언니가 말한다.


"너 아무도 안 쳐다봐. 너한테 아무도 관심 없어. 너만 너한테 관심 있지."


차디 찬 그녀의 말에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다가, 언니가 의자에 앉더니 그만 울라며 앉아보랜다. 언니의 걱정 섞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엉엉 울다가, 듣고 보니 눈물을 그치며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만 내 귀를 미워하는 건가. 아무도 잘 모를 텐데. 관심도 없는 게 맞을 텐데. 


마음이 놓였다. 무섭다가 슬펐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클. 이 과정을 중학교 때부터 수술을 한 후까지 적어도 20번은 듣는 것을 반복했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던 긴 동아줄이었다. 내 슬픔에 질려하지 않고 잔소리해준 언니 땡큐. 



참 웃기게도 집에서만 이런 약한 나였다. 


학교에서 한 남자아이가 내 이목을 끌고 싶었는지, 이동 수업을 마치고 책상에 돌아오니 하얀 수정액 펜으로 별로 안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나의 이름을 적어놓고는 하트를 적어놓았다. 정말 같잖아 한숨을 푹 쉬고, 급식실 줄에 서있는 그 아이에게 달려갔다. 와다다 달려가 나보다 키가 그 아이의 멱살을 낚아챘다. 꼿발을 채. 


"너 내 책상에 해놓은 거 점심 먹기 전까지 원상복귀 안 해놓으면, 선생님이랑 너희 부모님한테 다 얘기할 줄 알아."


급식실에 서있던 아이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 키가 140cm도 안 되는 작은 여자애가 멱살을 낚아채고 으르렁 거리고 있으니 수군거리며 쳐다보기 바빴다.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그 아이가 순순히 알았다며 금방 지우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곤 약속대로 다음 교시 시작 전에 말끔히 지워 놓았더라.


밖에서는 나에게 불합리한, 부당한, 불공평한,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말을 하고 다녔다. 속으로는 덜덜 떨렸다. 나의 안전지대인 집에서는 울며 가족들의 응원을 받기 바빴다. 밖에서 할 말 하는 네가 최고다!라는 언니들의 따봉을 받으며 늘 '멋진 나'라는 타이틀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었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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