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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가드너 Jan 28. 2024

침묵의 동굴 속으로

목구멍의 간질거림이 울분인지 기침인지

말을 삼키고 삼키다 보면

기침이 나온다.


고등학생 때 나는 폐렴에 걸린 적이 있었다.

8시까지 학교를 가기 위해 아침 7시 15분 지하철을 타야만 늦지 않았던 그 3년은,

매일 아침 바삐 뛰는 17, 18, 19살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아침마다 뛰어가고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늘 앉아있던 그 시기의 나는 몸이 허약해졌다.


잔기침을 달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시를 썼다.




기침


생각이 뿜어져 나온다.

곱씹고 곱씹었던 기억들을 추억삼아

또다시 되새김질하며

한탄, 그리움, 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말로에 다가설 즈음,

텁텁한 생각들이 목구멍 바깥으로 뿜어져 나온다.

가래없는 침뿐이지만

그것이 치료제라도 되는 듯

한 번 내뱉고 나면 뇌에 안개가 스산스러워지고

점차 본연의 나로 돌아오게 된다

간질거렸던 가슴팍에 비인 공간이 생긴 것을

무한한 그네들이 알아차렸는지

또다시 상념의 기침을 토해낸다.




그때는 목구멍을 간질이던 것이 기침인지 울분인지 말인지 모를 시기였다.






고등학생 시절은 텁텁함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잔뜩 건조한 입 안에 티라미수 가루를 한 움큼 욱여넣다가 켁켁 거리며 내뱉는 그런. 내게 텁텁함은 답답함이자 해결해 내고픈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고 분노의 씨앗이기도 했다.


중학생 때까지 하고픈 말을 모두 하던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가족 5명이서 북적거리던 집안은 언니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 갑자기 외동딸이 되었고, 늘 막내둥이로 사랑받던 시기는 지나 이제 곧 '성인'이 되니 스스로 삶에 대해 크나큰 책임감을 짊어져야 된다던 부모님의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 성인 되어야지. 

얼레벌레 수긍하며 끄덕거리다가 고2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학교에서 가장 듣기 싫게 소리 낼 줄 알던 수학 선생님이자 마녀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는 유독 나를 싫어했다. 네 멋대로 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지던 시기였기에 고등학교 1학년 선생님은 어려운 학생들 급식비 지원해 주는 시스템에 내 이름을 적었었고, 2학년으로 올라가자 저절로 신청이 되었다. 어느 날 그와 다른 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를 신청하려고 교무실을 방문했다.


"너는 내 허락도 없이 프로그램 신청하니? 네 멋대로 사는구나. 너희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니? 뭐 사회복지 쪽 하신다면서?"


주변에 이런 말을 하던 어른이 없었기에, 나에겐 몹시 충격적이었다. 조용히 학교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은 이런 걸까? 자리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말을 잘못한 걸까. 어떻게 말해야 합리적으로 말을 했어야 했던 걸까. 말이라는 것은 뭘까. 뱉은 말들을 반추하며 성찰해보려고 해도 어느 부분의 잘못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단어 한 마디를 꺼내기가 무서워졌다.


한 번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낌이 왔다. 아 저 사람 날 정말 싫어하는구나. 내가 하는 행동을 모두 거슬려하는구나.라는 것에 대한 직감.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소리가 아니라, 어른에게 날이 선 말을 들으니 세상이 무서웠다. 내가 아는 어른들은 이렇지 않은데. 학교 밖에 나가면 저 인간 같은 사람이 많을까. 두려웠다. 


소리 지르며 악을 쓰던 그녀를 경험하며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의견표시 없음. 당신에 대해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으며 그저 말을 줄이겠노라고 있는 것이 내가 전부였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침묵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 하던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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