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tus Dec 31. 2023

머리를 질끈 묶고 팔을 펼치며

오직 나에게 집중하던 시절

내 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4-5살 때다.

그때의 기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진 않지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네가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귀가 조금 작게 태어난 거야."




당시 조금 늦은 나이에 나를 가진 엄마는, 의사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고 했다. 자궁 내에 어떤 실 같은 '줄'로 인해 장애가 있을 수 있거나 태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거다. 노산이니 몸도 안 좋고 태아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를 선택했다. 


그녀는 명상을 했다고 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매일같이 명상하며 가장 마음 편할 때 나를 낳았다는 그녀. 엄마가 아니었으면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유아기의 시절을 거쳐 가던, 초등학생이 되기 1년 전의 나는 한바탕 수술을 치르고 또 나의 삶을 살아가던 해였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친구들에게 내 귀의 실체를 샅샅이 알려주곤 했다. 엄마가 늘 알려주던 설명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말하고 다녀야 한다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말하듯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알려주고 다녔다. 


"왜 내 귀가 작냐면, 내가 엄마 안에 있을 때 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나려고 왼쪽으로 누워서 잠이 들었대. 그렇게 10개월 있다가 깨니까 귀가 접힌 거야! 그리고 이건 수술했는데 잘 안되긴 했어. 성인이 되면 수술을 또 하면 된대!"


마냥 해맑고 쾌활하게 지낸 내가 꽤나 대견해 보였는지,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나에게 제안했다. 어린이집 마지막 해 재롱잔치에서 MC를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그리곤 몇몇 친구들과 경쟁을 하다가 내가 MC에 선발되어 진행을 맡았다. 7살의 나이에 맡은 첫 진행에서는 머리를 질끈 묶고 팔을 펼치며 말했다. 


"자 다음 친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시절은 남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기 전의 시절, 타인의 생각과 마음은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오직 나의 생각과 내가 가진 욕구에 집중하던 원초적인 7살의 마음이 더 대견해 보이는 지금이다. 내가 지닌 나의 모습,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과 후회, 분노와 아픔을 지나 받아들임 그 자체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어찌 보면, 원초적인 나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타인의 눈에 온갖 신경 쓰던 시기들은 당연하게 지나쳐가는 것이고 그 과정을 넘어 나에게 집중하는 것, 나의 욕구와 내 인생에서 집중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집중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 최대 과제가 아닐까. 나와 줄타기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나의 취약성 받아들이기'를 통해 그간 내가 거쳐온 나의 생각들, 소이증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흘러 흘러갔던 이야기들을 다잡고 어떻게 나의 그간의 생각들을 지나쳐오며 이제는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는지, 말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화해하고 또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지금의 내 이야기다.

이전 01화 소이증, 장애와 비장애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