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게 만든 건 재능이었고, 다시 쓰게 만든 건 익명이었다.
웹툰을 연재한 적이 있다. 현대 판타지물이었고, 내가 좋아하던 추리 요소도 살짝 섞여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멈춘 지 좀 됐다.
멈춘 이유가 딱 잘라서 있었던 건 아니다.
피로, 생활, 슬럼프— 흔한 단어들로 정리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혹시, 그때 그 충격이 나를 멈추게 한 건 아닐까?"
그날도 별거 없는 하루였다. 소파에 앉아, 그냥 TV를 틀었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드라마가 흐르고 있었다.
‘시그널’ 1화.
그전까지 나는 나름 창작자였다.
작품을 보면서 ‘이건 저렇게 되겠지’, ‘여기서 반전 넣겠구만’ 하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직업병 반, 자존심 반.
어쨌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그널 1화를 보다 멍해졌다.
이 많은 정보를, 이 감정과 밀도로… 이걸 1화에 다 넣었다고? 말이 안 되는데, 된다.
그리고 압도된다.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나 같은 사람이 작가인 게 아니었구나."
내가 하던 건… 그냥 애들 장난 같았다.
재능의 차이라는 말을 그날 처음 인정한 것 같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그널 하나 때문에 펜을 놓은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뭔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던 건 맞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멈췄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다시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있다.
완성도 높은 이야기 말고, 흠잡을 데 없는 구성도 말고, 그냥 내 이야기.
익명이라는 틈에 숨어, 누군지도 모르게, 조금은 더 솔직하게.
그때는 시그널이 나를 멈추게 했고, 지금은 브런치가 나를 다시 쓰게 한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걸지도 모르겠다.